“이건 라이더용 부츠야. 돌다리에서 덜 미끄러질 거야. 내 신발을 신으면 발가락이 구겨지고 대체로 힘든 상태가 되겠지만 적어도 비가 내릴 때 떨어지지 않을 가망이 생겨.”
리애넌은 열린 문과 그 너머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슬쩍 보고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 정말로 부츠 한 짝을 바꾸겠다는 거야?” “반대편으로 갈 때까지만.” 나는 열린 문 너머를 보았다. 벌써 지원자 세 명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난간다리 위를 올라서고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야 해. 우리 차례가 다 됐어.”
리애넌은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하더니 동의했고, 우리는 왼쪽 신발을 바꿔 신었다. 내가 겨우 신발끈을 다 묶을 때쯤에 줄이 다시 움직였고, 뒤에 있던 남자가 등을 미는 바람에 비틀거리면서 탁 트인 발판 위에 서야 했다.
“좀 가자. 건너편에서 할 일이 있는 사람도 있거든.” 그 남자의 목소리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신경마저 긁었다.
“지금 네가 그런 노력을 할 가치가 있긴 할까.” 나는 바람이 살갗을 후려치는 가운데 균형을 다시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한여름의 아침 바람이었다. 머리를 틀어올려줘서 고마워, 미라 언니.
망루 꼭대기는 휑했고, 내 허리쯤 올라오는 원형 구조물을 따라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진 석조 요철은 전망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다. 저 아래 계곡과 그곳을 흐르는 강이 갑자기 아주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저 아래에 마차를 몇 대나 대기시켰을까? 다섯 대? 여섯 대? 나는 통계를 알고 있었다.
난간다리는 대충 라이더 지원자의 15퍼센트를 앗아갔다. 이 시험을 비롯해서 모든 분과 시험은 드래곤을 타는 능력을 시험하도록 고안되었다. 바람 부는 좁은 돌다리를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드래곤의 등에서 균형을 잡고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사망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아마 다른 라이더들은 모두가 영광을 위해 그만한 위험은 무릅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면 자기들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만큼 오만하거나.
나는 양쪽 다 아니었다.
나는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배를 움켜쥔 채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으면서 리애넌과 딜런 뒤를 걸어갔다. 난간다리로 다가가는 내 손가락이 돌 위를 스쳤다.
망루 벽 앞, 빠끔히 뚫린 구멍에 지나지 않는 입구 앞에서 라이더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매를 뜯어낸 옷차림의 라이더 한 명은 위험한 다리 위에 발을 디디는 지원자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딜런은 정수리에 한 줄 빼고는 머리털을 다 밀어버린 또 한 명의 라이더에게 자세 잡으라는 지시를 들으면서,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듯이 가슴 속에 숨겨진 반지를 두드렸다. 그 반지가 행운을 가져오기를 나도 진심으로 빌었다.
세 번째 라이더가 내 쪽을 돌아보는데, 심장이 그대로 멈추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키가 무척 컸고, 바람에 날리는 검은 머리와 짙은 색 눈썹이 눈을 사로잡았다. 강인한 턱선을 덮은 따듯한 황갈색 피부에 검은 수염자국이 나 있었고, 가슴팍에 팔짱을 끼자 가슴과 팔의 근육이 물결치면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눈동자는… 눈동자는 금빛 반점이 박혀 있는 검은 ‘오닉스’ 같았다. 놀랍도록 선명한 대조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아니, 그 남자의 모든 면이 그랬다. 이목구비는 깎아낸 듯이 강렬하면서 또 완벽했다. 한 예술가가 평생을 들여 조각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치면 그의 입술에만 1년은 공들였으리라.
단언하건대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군사학교에 살다 보니 남자들을 정말 많이 봤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왼쪽 눈썹을 둘로 가르고 뺨 위까지 새겨진 사선 흉터마저도 남자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뿐이었다. 화끈하다 못해 타오르듯 강렬한 매력이었다.
상대를 절망에 밀어넣을 테지만 그럼에도 좋아하게 만들 수준의 압도적인 매력. 나는 순간 미라가 왜 같은 학년 말고는 엮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다.
“둘 다 반대편에서 보자!” 딜런이 신난 웃음을 지으며 어깨 너머로 말하고는 두 팔을 활짝 벌려 난간다리에 발을 디뎠다. “라이오슨, 다음 지원자 준비됐어?” 찢어진 소매의 라이더가 물었다. 제이든 라이오슨?
“준비됐어, 소른게일?” 리애넌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검은 머리가 휙 돌아보더니 몸을 아예 내 쪽으로 돌렸고, 내 심장은 온갖 엉뚱한 이유로 쿵쾅거렸다. 패인 곡선과 소용돌이들로 이뤄진 반역의 인장이 그 남자의 드러난 왼쪽 손목에서 시작되어 검은 제복 안으로 사라졌다가 목깃 위로 다시 나타나서는 목을 따라 뻗어 올라가다가 턱선에서 멈췄다.
“망했네.”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그 남자는 단단히 고정된 내 땋은 머리를 잡아뜯으려는 요란한 바람 소리 속에서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듯이 눈매를 좁혔다.
“소른게일?” 남자가 다가와서 나는 시선을… 올리고 또 올려야 했다. 맙소사. 나는 그 남자의 쇄골에도 닿지 않았다. 거대한 남자였다. 190은 넘을 게 확실하다.
정확히 미라의 표현대로 내가 ‘섬세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자 반짝이는 오닉스 같은 눈동자가 차갑고 순수한 증오 덩어리로 변했다. 쌉싸름한 향수처럼 풍겨오는 혐오감의 맛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바이올렛?” 리애넌이 앞으로 가면서 물었다.
“네가 소른게일 장군의 막내로군.” 장중하면서도 비난하는 목소리였다. “당신은 펜 라이오슨의 아들이고.” 나는 그 확실한 사실을 뼈에 새기면서 맞받아쳤다. 굳게 턱을 들어올리고 떨지 않으려고 온몸의 근육을 고정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그놈은 네가 누군지 알자마자 죽여버릴 거야.’ 미라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튀어다녀서 두려움에 목이 막혔다. 라이오슨은 나를 허공에 던져버릴 것이다. 나를 들어올려 망루 밖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나에겐 난간다리를 걸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언제나 말하려다가 만 것처럼 ‘약한’ 채로 죽을 것이다.
제이든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자 턱 근육이 한 번, 두 번, 수축했다. “네 어머니가 내 아버지를 잡고 처형을 감독했지.” 기다려. 여기에 증오할 권리가 있는 게 저놈뿐인가? 내 혈관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당신 아버지는 내 오빠를 죽였어. 우린 주고받은 것 같은데.”
“비교도 안 돼.” 제이든의 번득이는 시선은 모든 세부사항을 샅샅이 기억하는 것처럼, 또는 약점이라도 찾는 것처럼 나를 훑어보았다.
“네 언니가 라이더였지. 그래서 가죽옷이 있는 거로군.”
“아마도 그렇겠지.” 나는 제이든 뒤에 있는 난간다리를 건너는 시험이 아니라 이 눈싸움에서 이겨야 분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그 시선을 받아냈다. 어쨌든 나는 건너갈 것이다. 미라가 형제를 둘 다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이든이 두 손을 꽉 움켜쥐며 근육을 긴장시켰다. 나는 혹시 모를 타격에 대비했다. 제이든이 나를 이 망루에서 던져버릴지는 몰라도, 그걸 쉬운 일로 만들어줄 마음은 결코 없었다.
“너 괜찮아?” 리애넌이 제이든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제이든이 그쪽을 흘긋 보았다. “친구인가?" “계단에서 만났는데.” 리애넌은 어깨를 펴고 말했다. 제이든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우리의 짝짝이 신발을 보더니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주먹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재미있군.”
“날 죽일 거야?” 나는 턱을 조금 더 들어올렸다. 제이든의 시선이 나와 부딪치는 사이, 하늘이 열리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내 머리카락, 내 가죽옷, 그리고 우리 주위의 돌을 흠뻑 적셨다.
그때 비명이 허공을 찢었다. 리애넌과 나는 흠칫 놀라 난간다리로 주의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딜런이 미끄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심장이 목까지 뛰어오르는 기분으로 숨을 들이켰다. 겨우 두 팔로 돌다리를 잡고 매달린 딜런은 디딜 곳을 찾아서 발을 마구 걷어찼지만 아래에는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몸을 끌어올려, 딜런!” 리애넌이 외쳤다. “신들이시여!” 나도 모르게 손을 움직여 입을 막았지만, 딜런은 빗물에 미끄러워진 돌을 놓치고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 몸뚱이가 저 아래 계곡에서 무슨 소리를 냈다 해도 바람과 빗소리에 먹혀 버렸다. 내 억눌린 비명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다시 돌아보니, 제이든이 해석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뭐 하러 널 죽이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겠어? 난간다리가 해줄 텐데.” 제이든의 입술이 구부려지며 심술궂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네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