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분과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오해가 있다. 기본적으로 라이더들은 다른 생도를 암살하지 않는다. 다만 그해에 드래곤이 부족하거나, 비행단에 골칫거리가 되는 생도만 없다면 말이다. 그때는 일이… 흥미로워질 것이다.
― 아펜드라 소령, 《라이더 분과 지침》(무허가 판본)
나는 오늘 죽지 않을 거야.
그 말이 내 주문이 되었다. 리애넌이 난간다리 입구에서 명단을 대조하는 라이더에게 이름을 대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제이든의 시선에 담긴 증오는 실체가 있는 불길처럼 내 옆얼굴을 태웠고, 돌풍이 불어올 때마다 피부를 강타하는 빗방울조차도 그 열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내 등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두려움의 오한도 마찬가지였다.
딜런은 죽었다.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아, 바스지아스로 향하는 도로 양쪽에 끝없이 줄지어 선 묘비로만 남을 것이다. 안전한 분과 대신 라이더의 길에 목숨을 건 야심찬 지원자들을 향한 또 하나의 경고비가 될 것이다. 이제는 나도 왜 미라가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경고했는지 이해했다.
리애넌이 망루 입구 양쪽을 잡더니 어깨 너머로 나를 보았다. “반대편에서 기다릴게.” 폭풍 속에서 외치는 리애넌의 눈동자에 담긴 두려움은 내 두려움을 거울에 비춘 듯했다.
“반대편에서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그러진 미소 비슷한 것까지 짜냈다. 리애넌이 난간다리 위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행운의 남신 ‘지날’의 손이 오늘 부족할 것을 알면서도 소리 없는 기도를 올렸다.
“이름?” 가장자리에 있던 라이더가 물었다. 그 옆에 선 동료는 종이가 젖지 않도록 두루마리 위에 망토를 펼쳐드는 무익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이올렛 소른게일.” 대답하는데 머리 위에서 천둥이 쳤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소리였다. 나는 언제나 폭풍이 요새 창문을 때리고, 내가 웅크린 자세로 보고 있던 책에 환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던지는 밤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의 폭우는 내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잽싸게 시선을 던지자 이미 빗물 때문에 잉크가 젖어서 번져가는 딜런과 리애넌의 이름이 보였다. 묘비를 제외하고 어딘가에 딜런의 이름이 적히는 건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서기들이 소중한 사망자 통계를 내도록 난간다리 끝에도 두루마리가 하나 더 있을 터였다. 만약 다른 인생이었다면 역사적인 분석을 위해 그 자료를 읽고 기록하는 사람은 나였겠지.
“소른게일?” 라이더는 고개를 들고, 놀라움에 눈썹을 치켜떴다. “소른게일 장군과 같은?” “그 소른게일 맞아.” 벌써부터 지겨워지는데 앞으로 더 나빠질 게 뻔하다.
내 어머니가 이곳 학장인 이상 그녀와의 비교는 피할 수가 없다. 더 최악은 다들 내가 미라처럼 타고난 라이더라거나 브레넌처럼 눈부신 전략가라고 여기는 것이다. 아니면 나를 한 번 보고 바로 그 셋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인간 사냥을 선포할지도 모르지.
나는 망루 양쪽에 손을 대고 손가락 끝으로 돌을 쓸었다. 아직 아침 햇살의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비 때문에 빠르게 식어가는 중이었다. 돌은 매끈하지만 이끼가 미끄럽게 자라진 않았다.
내 앞에서는 리애넌이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난간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아마도 네 번째 같았는데 빗속을 걸어갈수록 그 모습이 흐릿해졌다.
“장군에겐 딸이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다른 라이더가 다시 불어온 돌풍에 맞춰 망토 각도를 틀면서 물었다. 하반신이 망루에 가려져 있는 이 위치에서도 이렇게 바람이 심한데 곧 올라설 난간다리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수준으로 바람이 후려칠 것이다.
“그 소리 많이 들어요.” 나는 차분하게 호흡하며 내달리는 심장의 속도를 늦추려 애썼다. 공포에 질리면 죽는다. 미끄러지면 죽는다. 난… 아, 집어치우자. 이 시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다시 불어온 돌풍이 나를 망루 벽 틈으로 비스듬히 밀어붙이는 바람에 순식간에 난간다리 위에 한 걸음을 디디며 돌벽을 잡았다.
“그러면서 드래곤을 탈 수 있다고?” 뒤에 있던 재수 없는 지원자가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런 균형 감각이라니 대단한 소른게일 납셨네. 네가 들어갈지 모를 비행단이 안됐다.” 나는 균형을 되찾고 배낭끈을 더 단단히 조였다.
“이름?” 라이더가 다시 물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잭 발로우.” 내 뒤에 있던 놈이 대답했다. “그 이름을 기억해둬. 언젠가는 내가 비행단장이 될 테니까.” 목소리에서마저 오만함의 악취가 풍겼다.
“출발해, 소른게일.” 제이든이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자 제이든이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혹시 동기 유발이 살짝 필요하려나?” 잭이 두 손을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이런 젠장, 저놈이 날 밀어서 떨어뜨리려나.
공포가 순식간에 혈관 속을 질주하며 나는 달아나듯이 안전한 망루를 벗어나 난간다리에 올라섰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다. 심장이 어찌나 거세게 뛰는지 귓속에서 북이 울리는 것 같았다.
‘네 앞에 있는 돌만 보고, 아래는 내려다보지 마.’ 미라의 충고가 머릿속을 울렸지만, 모든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도 귀담아두기 힘들었다.
나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두 팔을 들고 길스테드 소령과 안마당에서 연습했던 신중하고 짧은 보폭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바람과 비가 더해진 데다가 까딱하면 60미터 아래로 떨어질 상황은 연습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발에 닿는 돌은 울퉁불퉁하고 돌 사이를 모르타르로 발라놓아 걸려 넘어지기가 쉬웠다. 결국 발에서 신경을 떼기 위해 앞길에 집중했다. 무게중심을 고정시켜 자세를 똑바로 유지하려니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맥박이 무섭도록 빨라지자 머리가 빙빙 돌았다.
침착해. 침착해야 산다. 나는 음치라서 그럴싸하게 허밍을 하지도 못했으니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 노래를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학자다. 아카이브만큼 차분해지는 곳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떠올렸다. 사실. 논리. 역사.
‘네 마음은 이미 답을 아니까 기억을 불러오기만 해.’ 아빠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몸을 돌려서 망루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내 두뇌의 논리적인 면을 작동시켜야 했다.
“대륙에는 두 개의 왕국이 있고, 우리는 400년 동안 전쟁 중이다.” 나는 서기용 시험을 준비하느라 머릿속에 때려박아서 쉽게 불러낼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를 읊었다.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난간다리 위를 이동했다.
“우리 고국인 나바르가 더 큰 왕국으로 여섯 개의 독특한 지역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남쪽이면서 가장 큰 지방인 티렌더는 포로미엘 왕국의 크로블라 지방과 국경 을 접하고 있다.”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호흡이 가라앉고, 심장 뛰는 속도가 안정되며, 어지러움이 줄어들었다.
“동쪽에는 포로미엘 왕국의 나머지 두 지역인 브레이빅과 시그니슨이 있는데 에스벤 산맥이 자연적인 국경이 되어준다.” 마침내 절반을 표시하는 선을 지났다. 아찔하게 높은 지점에 올라와 있었지만 그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아래는 보지 마. “크로블라 너머, 우리의 적국 너머에는 불모지가 있는데 사막이….”
순간 천둥이 치면서 바람이 강하게 몸을 밀어붙였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 두 팔을 마구 휘둘렀다. “젠장!”
강풍 때문에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주저앉은 다음 다리 가장자리를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울부짖는 바람이 나를 휘감는 동안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어 버텼다. 공포의 칼끝이 나를 붙잡자 폐가 과호흡을 벌일 조짐이 느껴졌다.
“나바르 안에서! 티렌더는 국경지대 지방 중에서 마지막으로 동맹에 합류하여 레지날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곳이다.” 나는 울부짖는 바람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억지로 머리를 굴려 온몸을 마비시키는 불안이라는 아주 실제적인 위협에 대항했다.
“또한! 티렌더는 627년 후에 분리 독립을 시도한 유일한 지역으로 이 시도가 성공했다면 우리 왕국은 결국 무방비한 상태로 남았을 것이다.”
리애넌은 여전히 내 앞에 있었는데 대충 가늠하기로는 4분의 3 지점 같았다. 잘된 일이었다. 리애넌은 성공할 자격이 있었다.
“포로미엘 왕국은 주로 경작에 적합한 평원과 습지로 이뤄져 있으며, 특출난 직물과 끝없는 곡식 밭, 그리고 소소한 마법을 증폭시킬 수 있는 독특한 보석 결정체로 유명하다.” 나는 머리 위의 검은 구름을 아주 잠깐 올려다본 후에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디디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반면 나바르의 산지는 광물이 풍부하며 동쪽 지방에서는 단단한 목재가 나고 노루와 큰사슴이 제한 없이 잡힌다.” 다음 걸음을 옮기다가 떨어져 나온 모르타르 조각 몇 개를 걷어차는 바람에 후들거리는 팔로 균형을 되찾을 때까지 멈춰서야 했다. 다시 전진하기 전에 침을 삼키며 내 몸무게를 버티는지 시험해보았다.
“200년도 더 전에 체결한 레손 무역 합의에 따라 크로블라와 티렌더의 경계선에 있는 애더빈 기지에서 1년에 네 번씩 나바르의 고기와 목재를 포로미엘의 직물 및 농산물과 교환한다.”
여기까지 오니 라이더 분과가 보였다. 산 위에 세운 거대한 석조 토대가 라이더 성채 맨 아랫부분까지 솟아올랐는데, 그 기단부가 이 다리 끝과 이어졌다. 내가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어깨 부분의 가죽으로 얼굴에 묻은 빗물을 훑어내며 흘긋 뒤를 보았다.
잭은 4분의 1 표시를 지난 직후에 다부진 몸을 가만히 멈춰 세운 상태였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두 손은 옆으로 늘어뜨렸다. 운도 좋은 새끼, 바람이 불어도 균형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네. 그때 분명 잭이 나를 보고 씩 웃은 것 같았는데, 내 눈에 빗물이 들어간 탓일 수도 있었다.
여기에 계속 있을 순 없다. 살아서 일출을 보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공포에 지배당할 수는 없다. 나는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해 두 다리 근육을 쥐어짜며 천천히 돌바닥에서 몸을 세웠다. 두 팔을 벌리고, 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