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돌풍이 불어오기 전에 최대한 멀리까지 가야 한다. 잭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가 피가 얼어붙는 기분이 되었다. 녀석은 나에게 등을 돌린 채 위태롭게 뒤뚱거리면서 올라오는 다음 지원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잭은 그 여윈 지원자가 짊어진 무거운 배낭의 끈을 잡아챘고, 나는 충격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로 잭이 그를 곡식자루처럼 난간다리 아래로 집어던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떨어진 지원자의 비명은 내 귀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빌어먹을!
“다음은 너야, 소른게일!” 잭이 소리쳤다. 협곡에서 시선을 홱 떼어내어 쳐다보니 그놈이 사악하게 웃으며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뒤이어 잭이 성큼성큼 쫓아오는데, 무시무시한 속도로 우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움직여. 당장.
“티렌더는 대륙 남서부를 아우른다.” 나는 다시 빠르게 읊었다. 보폭은 일정했지만 좁고 매끄러운 길에서 허둥거리다 보니 왼쪽 발이 디딜 때마다 조금씩 미끄러졌다. “험한 산지로 이뤄진 데다 서쪽으로는 에메랄드 바다, 남쪽으로는 아크타일 대양을 접한 티렌더는 거의 난공불락이다. 지리적으로는 자연 보호막인 드랄로 절벽에 의해 나뉘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돌풍이 나를 후려쳐 발이 미끄러졌다. 심장이 펄쩍 뛰었다. 비틀거리다가 넘어지자 돌바닥이 맹렬한 기세로 나를 맞이했다. 무릎이 돌을 쾅 찧으며 날카로운 통증에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왼발은 지옥에서 솟은 듯한 다리 가장자리에서 달랑거리고, 잭은 이제 멀지 않은 곳까지 왔는데 내 두 손은 잡을 곳을 찾아 헤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뱃속이 뒤틀리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아래를 보고 만 것이다.
내 코와 턱으로 흘러 떨어진 빗물이 돌바닥에 튀었다가 60미터 이상 아래에 있는 계곡을 요란하게 관통하는 강물에 합류했다. 나는 점점 목을 조르는 응어리를 꿀꺽 삼키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눈을 깜박였다.
난 오늘 죽지 않을 거야.
간신히 돌다리 가장자리를 붙잡고, 미끄러운 돌이 버텨주겠다 싶은 최대치까지 몸무게를 실은 후에 왼쪽 다리를 빙 돌려 끌어올렸다. 발바닥 앞부분이 바닥에 닿았다. 여기서부터는 세상 어떤 사실을 떠올려도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바닥 마찰이 더 좋은 오른발을 몸 아래 두는 게 좋겠지만, 한 번만 잘못 움직여도 저 아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경험하게 될 터였다. 떨어지는 충격만으로 죽겠지.
“잡으러 간다, 소른게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을 밀치고 벌떡 일어나면서 부츠가 바닥을 제대로 디디기만을 기도 했다. 떨어진다면 좋다, 그건 내 실수다. 하지만 저 재수 없는 놈에게 살해당하진 않겠다.
다른 살인자들이 기다리는 반대편까지 가야지. 분과의 모두가 나를 죽이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비행단의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생도들만 날 죽이려 들겠지. 라이더들이 힘을 숭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행단이나, 비행전대나, 비행대대나, 오직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의 효과를 발휘하며, 또한 그 고리가 끊어지면 모두가 위험에 빠진다.
잭은 내가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저 살인을 즐기는 정신이 불안정한 개새끼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겠지.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나는 두 팔을 옆으로 펼치고 이 길 끝, 성채 안마당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리애넌이 막 안마당을 디디고 있었다. 나도 빗발을 무릅쓰고 밀고 나아갔다. 온몸에 힘을 주고 무게중심을 고정시키려니 이번만은 내가 대다수보다 키가 작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넌 떨어지는 내내 비명을 지를까?” 미친놈이 또 조롱했다.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목소리가 전보다 가까웠다.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두려움을 느낄 여유도 없기에 나는 그 감정을 마음속에 있는 철창 뒤에 밀어넣는 상상을 했다. 드디어 난간다리 끝이, 성채 입구에서 기다리는 라이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꽉 채운 배낭 하나도 짊어지지 못하는 사람이 입학시험에 통과할 리가 없어. 넌 오류야, 소른게일.” 잭이 더 또렷해진 목소리로 외쳤지만, 나는 그놈이 얼마나 뒤에 있는지 확인하려 속도를 늦추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내가 널 찍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드래곤이 널 먹어치우게 두는 것보다 훨씬 자비롭잖아. 드래곤은 네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그 가느다란 다리부터 먹어치울걸. 자, 자.” 잭이 역겹게 꾀어내는 소리를 냈다. “내가 널 기꺼이 도와주겠다 이거야.”
“개소리 작작해.” 나는 중얼거리며 앞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성채벽 외곽까지 4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왼발이 미끄러지면서 잠깐 기우뚱했지만 심장이 한 번 뛰는 사이에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두꺼운 성벽과 이어진 요새는 알파벳 L자 형태로 산속에 파묻힌 키 큰 석조 건물로, 불에 잘 견디도록 만들어졌다. 이유야 뻔하다. 성채 안마당을 에워싼 성벽은 두께가 3미터에 높이가 2.5미터이며 열린 틈은 딱 한 군데였다. 그리고 나는 그 틈에 이제, 거의, 다, 왔다.
양쪽으로 벽이 감싸인 지점에 발이 닿는 순간, 나는 안도감에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네가 안전할 것 같아?” 잭의 목소리는 여전히 귀에 거슬렸고… 가까웠다.
난간다리 양옆이 벽에 안전하게 에워싸이자 아드레날린이 몸에서 최대치를 끌어내는 가운데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마지막 3미터를 뛰었다. 잭의 발소리가 바로 내 뒤로 돌진했다.
우리가 동시에 가장자리에 도착한 순간, 잭이 손을 뻗어 내 배낭에 달려들었다가 놓치고는 내 엉덩이를 스쳤다. 나는 앞으로 돌격하듯 난간다리에서 안마당으로 뛰어내렸고, 그곳에는 라이더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잭이 좌절감에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썩이는 가슴을 옥죄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빙글 돌리면서 옆구리에 꽂혀 있던 단검을 뽑았다. 잭은 바로 그 순간에 미끄러지듯 내 바로 위쪽 난간다리에 멈춰섰다. 호흡이 뚝뚝 끊겼고, 얼굴은 벌게져 있었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가늘게 뜬 차가운 푸른 눈에 살의가 새겨져 있었다….
이어 그 눈이 내 단검 끝을 향했다. 단검은 그의 바지에서 움푹 들어간 지점, 정확히 그의 불알 있는 곳을 겨눴다.
“당장은, 안전, 할 것, 같은데.” 나는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했다. 근육이 다 떨렸지만 단검을 쥔 손만큼은 떨리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잭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숱 많은 금빛 눈썹이 푸른 눈동자 위로 날카로운 사선을 그리더니 무섭도록 큰 몸 전체가 내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더 내딛지는 않았다.
“분과가 집합 중이거나 관리 중일 때, 즉 선배 생도가 지켜보고 있을 때 라이더가 다른 라이더를 해치는 것은 불법이다.” 나는 아직도 심장이 목에서 뛰는 기분으로 코덱스 조항을 읊었다.
“이는 비행단의 효율을 저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뒤에 모인 사람들이 있으니 분명히 집합한 거라고 주장 하겠어. 코덱스 3조….”
“알 게 뭐야!” 잭이 살짝 움직이려는 동시에 내 단검이 그의 바지 맨 위를 갈랐다.
“다시 생각해봐.” 나는 혹시 잭이 그대로 돌진할까 봐 자세를 조정했다. “내 손이 미끄러질 수도 있어.”
“이름은?” 내 옆에 있던 라이더는 우리가 오늘 본 장면 중에서 제일 지루한 축에 속한다는 듯이 느릿느릿 물었다. 나는 1,000분의 1초 정도 그쪽을 보았다. 그 여성 라이더는 한 손으로는 턱까지 오는 불같이 빨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두루마리를 쥔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망토 어깨에 수놓인 세 개의 은빛 사각별을 보니 3학년이었다. “넌 라이더치고는 꽤 작은데 그래도 해낸 것 같군.”
“바이올렛 소른게일.” 나는 다시 잭에게 100퍼센트 집중하면서 대답했다. 잭이 내려뜬 눈썹 능선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물어보기 전에 답하자면 그 소른게일 맞아.”
“그 움직임을 보니 놀랍지도 않군.” 여자는 두루마리 위에 우리 어머니가 쓰는 것 같은 펜을 쥐고서 말했다. 내 평생 들어본 가장 근사한 칭찬일지도 몰랐다.
“너는?” 여성 라이더가 잭에게 묻는 게 분명했지만 확인하려고 그쪽을 보기에는 내 적을 살피기에도 바빴다.
“잭, 발로우.” 이제 잭의 입가에는 사악한 작은 미소도 맺히지 않고, 나를 죽이는 게 얼마나 즐거울지 떠들어대는 조롱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이목구비에는 응징을 예고하는 순수한 악의만이 가득했다. 불안감에 목덜미 털이 곤두섰다.
“흠, 잭.” 내 오른쪽에 있던 남성 라이더가 잘 정돈한 검은 염소수염을 긁으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그는 망토를 걸치지 않아서 낡은 가죽 재킷에 꿰매어 붙인 헝겊조각들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소른게일 생도는 지금 네 급소를 움켜쥐었다. 실제로만이 아니라 비유적으로도 그래. 그 말이 맞아. 집합 시에 라이더들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규정이야. 쟬 죽이고 싶다면 대련장에서 해야 할 거다. 쟤가 널 난간다리에서 내려오게 해준다면 말이지. 엄밀히 말해서 아직 난간다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므로 너는 생도가 아니다. 쟤는 생도고.”
“내가 내려가자마자 쟤 목을 꺾어버린다면?” 으르렁거리는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러면 넌 좀 일찍 드래곤들을 만나게 되겠지.” 빨간 머리 라이더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여기에선 재판을 기다리지 않아. 바로 처형하지.”
“어쩔래, 소른게일?” 남성 라이더가 물었다. “잭이 고자로 시작하게 할래?”
젠장. 어떻게 하지? 이 각도에서는 잭을 죽일 수가 없다. 고환만 잘라냈다가는 저놈이 날 더 미워하게 만들 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규칙에 따를 거야?” 잭에게 물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팔은 죽도록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는 단검을 제대로 겨누고 있었다.
“나한테 선택권이 없는 것 같군.” 잭이 입꼬리를 기울이며 비웃음을 자아냈고, 그가 두 손바닥을 활짝 펴서 들어올리자 자세에서도 긴장이 풀렸다.
나는 단검을 내렸지만 계속 손바닥에 쥐고 준비태세를 갖춘 채 옆걸음으로 두루마리에 기록 중인 빨간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잭도 안마당으로 내려섰다. 옆으로 지나가다가 나와 어깨를 부딪치더니 잠시 멈춰 몸을 바싹 기울였다. “넌 죽은 목숨이야, 소른게일. 그리고 널 죽이는 사람은 내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