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드래곤들은 위대한 고름팔리아스의 자손이다. 가공할 몸집으로 유명한 이들은 무자비한 성격으로, 특히 드물게 나타나는 블루 대거테일은 꼬리 끝에 있는 칼날 같은 스파이크를 한 번 휘둘러서 적의 내장을 꺼낼 수 있다.
― 케이오리 대령, 《휴대용 드래곤 도감》
잭이 날 죽이고 싶다면 줄을 서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제이든 라이오슨이 잭을 이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오늘은 아니야.”
나는 단검 손잡이를 단단히 쥔 채 대꾸했고, 잭이 몸을 기울여 숨을 들이마실 때도 어찌어찌 몸서리를 참아냈다. 잭은 미친 개처럼 내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비웃음을 던지며 성채의 널찍한 안마당에 모여서 축하하고 있는 생도와 라이더들 사이로 걸어갔다.
9시쯤이나 되었을까, 아직 이른 시각이었지만 나는 이미 내 앞줄에 서 있던 지원자들에 비해 생도 수가 적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압도적으로 가죽옷 비중이 많은 것으로 보아 새로운 생도들을 살펴보려 나온 2학년과 3학년 같았다.
폭우는 보슬비로 변했다. 마치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험을 더 힘들게 만들려고 했을 뿐이라는 듯이… 그래도 나는 해냈다.
나는 살아 있다.
내가 해냈다.
그제야 몸이 떨리고 왼쪽 무릎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터졌다. 난간다리를 내리찍었던 무릎이었다. 한 걸음을 디디자 왼쪽 다리가 무너지려고 했다. 누가 내 약점을 알아차리기 전에 단단히 묶어야 했다.
“적을 만든 것 같군.” 빨간 머리는 어깨에 메고 있던 치명적인 쇠뇌를 가볍게 고쳐 메면서 말했다. 두루마리 너머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 헤이즐색 눈동자에 기민한 빛이 어렸다. “나라면 저놈이 등을 찌르지 않게 조심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등은 물론이고 모든 부위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다음 지원자가 난간다리에서 다가오는 사이에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잡더니 돌려세웠다. 나는 단검을 반쯤 들어올리고 나서야 리애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해냈어!” 리애넌은 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씩 웃었다.
“우리가 해냈어.” 나도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는 허벅지까지 덜덜 떨렸지만 단검을 옆구리 칼집에 넣는 데 성공했다. 우리 둘 다 생도가 되어 여기에 섰으니 리애넌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적어도 세 번은 떨어졌을 거야. 네 말대로였어. 신발 바닥이 미친 듯이 미끄럽더라. 여기 있는 사람들 봤어? 방금 머리카락에 분홍색 줄을 넣은 2학년을 봤어. 그리고 이두박근 전체에 드래곤 비늘을 문신한 남자도 있어.”
“규칙에 순응하는 건 보병 몫이지.”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리애넌은 나에게 팔짱을 끼고 모여 있는 사람들 쪽으로 끌고 갔다. 무릎이 비명을 지르며 엉덩이부터 발까지 통증을 길게 뻗쳤고, 나는 절뚝거리면서 리애넌에게 무게를 실었다.
빌어먹을.
이 메스꺼움은 대체 뭐야? 왜 몸의 떨림을 멈출 수가 없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다리에는 지진이 일어나고 머리는 빙빙 돌고. 몸을 똑바로 유지할 길이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리애넌이 아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부츠 바꿔야지. 저기 벤치가 하나….”
군중 사이에서 깔끔한 검은 제복을 입은 키 큰 인물이 튀어나오더니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리애넌은 용케 피했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그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바이올렛?” 힘센 두 손이 내 팔꿈치를 잡아 지탱했고, 나는 척 봐도 충격에 크게 뜬 친숙하고도 매력 넘치는 갈색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안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아마도 뒤틀리고 일그러진 표정이 되어 나왔을 것이다.
그는 작년 여름보다 키가 커 보였고, 턱수염은 새로웠으며, 내가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을 만큼 몸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아니, 어쩌면 그건 내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차례 나의 공상에 등장했던 아름답고 편안한 미소는 지금 그의 찌푸린 입매와 거리가 멀었고, 모든 면에서 예전보다 날카로워 보였지만, 그것도 잘 어울렸다.
턱선과 이마, 심지어는 균형을 잡으려는 내 손가락에 잡힌 이두박근마저도 단단했다. 데인 에이토스는 1년 사이에 귀엽고 매력적인 남자에서 끝내주는 남자로 변모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부츠에 대고 토하기 직전이었다.
“네가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데인이 빽 소리를 질렀다. 눈에 깃들었던 충격은 뭔가 낯설고 치명적인 감정으로 변했다. 이건 나와 같이 자란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2학년 라이더였다.
“데인, 만나서 반가워.” 많이 절제된 표현이었지만, 몸의 떨림이 극도로 커진 데다가 담즙이 목으로 기어오르고 현기증 때문에 메스꺼움이 심해지기만 했다. 그때 무릎이 풀려버렸다.
“망할, 바이올렛.” 데인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한 손으로 내 등을 받치고 반대쪽 손으로는 내 팔꿈치를 잡은 채, 재빨리 나를 데리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져서 성채의 첫 번째 방어 망루에 가까운 벽감으로 갔다. 그늘이 있는 이 숨겨진 공간에는 단단한 나무 벤치가 하나 있었는데, 데인은 그곳에 나를 앉히더니 배낭을 벗게 도왔다.
내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나 토할 것 같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어.” 데인이 지시하는 냉혹한 말투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따랐다. 그는 내가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는 동안 내 등허리를 둥글게 문질렀다. “아드레날린 때문이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자갈길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넌 대체 누구지?”
"난 리애넌이야. 바이올렛의… 친구인데." 나는 짝짝이 부츠 아래 자갈을 노려보면서 뱃속에 든 빈약한 내용물이 가만히 있기를 빌었다.
“잘 들어, 리애넌. 바이올렛은 괜찮아.” 데인이 지시했다. “그리고 혹시 누가 묻거든 정확히 내가 말한 대로 대답해라. 바이올렛의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가서 그럴 뿐이라고. 이해했나?”
“바이올렛이 어떤지는 누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리애넌은 데인 못지않게 날카로운 투로 되받아쳤다. “그러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특히나 내가 난간다리를 건넌 게 바이올렛 덕분일 때는.”
“그 말, 진심인 편이 좋을 거다.” 경고하는 데인의 신랄한 목소리가 내 등을 끊임없이 문지르는 편안한 손길과 대조를 이뤘다.
“그러는 너는 누군데.” 리애넌이 쏘아붙였다.
“내 아주 오랜 친구야.”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고 메스꺼움이 약해졌다. 그게 그럴 때가 되어서인지 자세 덕분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계속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어찌어찌 왼쪽 부츠 끈을 풀었다.
“오.” 리애넌이 대답했다.
“그리고 2학년 라이더다, 생도.” 데인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리애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는지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여기에선 아무도 널 못 보니까, 천천히 해. 바이.” 데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야 난간다리에서 나를 던져버리려 한 개자식에게서 살아남고, 겨우 건너자마자 토하면 약하다고 여겨질 테니까 말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똑바로 앉았다.
“정확해.” 데인이 대답했다. “다쳤어?” 그의 시선이 내 몸 구석구석을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듯 절박하게 훑었다.
“무릎이 아파.” 나는 작은 소리로 인정했다. 데인이니까. 우리는 내가 다섯 살, 데인이 여섯 살 때부터 알았고, 데인의 아버지는 내 어머니가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 중 하나였다. 데인은 미라가 라이더 분과로 떠났을 때나 브레넌이 죽었을 때 나를 지탱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내 턱을 잡고 얼굴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살폈다. “그게 다야? 확실해?” 그의 두 손이 내 옆구리를 쓸어내리다가 갈비뼈가 있는 곳에서 멈췄다. “단검을 차고 있는 거야?”
리애넌이 내 부츠를 벗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구리에 셋, 부츠 안에 하나 있어.” 신들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단검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여기에 앉아 있을 수나 있었을지.
“허.” 데인은 두 손을 내리더니 나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완전히 낯선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그러나 눈을 한 번 깜박이자 그런 표정은 사라졌다.
“부츠를 바꿔 신다니. 너희 둘 다 터무니없군. 바이, 이 녀석을 믿어?” 그는 리애넌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리애넌은 안전한 성채 벽 앞에서 기다리다가 잭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나를 던져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다른 1학년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일 뿐, 믿을 수 있는 최대치로는 믿었다.
“좋아.” 데인은 일어나서 리애넌을 돌아보았다. 그의 가죽옷 옆구리에도 칼집이 있었는데, 내 것은 아직 빈 데가 있는 반면에 그의 칼집에는 모두 단검이 꽂혀 있었다. “나는 데인 에이토스고, 제2비행단 불꽃전대 2대대장이다.”
대대장이라고? 내 눈썹이 휙 올라갔다. 생도 중에서 가장 높은 직책이 비행단장과 전대장이었다. 둘 다 엘리트 3학년이 맡았다. 2학년도 대대장까지 오를 수는 있지만 특출한 경우에만 가능했다. 드래곤이 계약할 상대를 고르는 탈곡 시간이 있기 전까지는 일반 생도고, 그 후에 라이더가 된다. 일찍부터 계급장을 주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자주 죽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이 얼마나 빨리 건너거나 떨어지느냐에 달렸지만 난간다리 시험은 몇 시간 안에 끝날 거다. 두루마리를 든 빨간 머리를 찾아서, 아마 쇠뇌를 메고 있을 텐데, 데인 에이토스가 너와 바이올렛 소른게일 둘 다 자기 반에 넣는다고 전해라. 혹시 뭐라고 물어보면 작년 탈곡 때 구해준 일로 나에게 빚진 게 있지 않냐고 해. 바이올렛은 내가 곧 안마당으로 데리고가겠다.”
리애넌은 나를 슬쩍 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우릴 보기 전에 가.” 데인이 날카롭게 말했다.
“갑니다.” 리애넌은 부츠에 발을 밀어넣고 잽싸게 끈을 묶으면서 대답했다. 나도 빠르게 끈을 묶었다.
“너한테 이렇게 큰 승마 부츠를 신고 난간다리를 건넜어?” 데인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랑 신발을 바꾸지 않았으면 걘 죽었을 거야.” 나는 일어섰다가 무릎이 항의하면서 꺾이려고 하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우리가 널 여기서 내보낼 방법을 찾지 못하면 네가 죽겠지.” 데인은 팔을 내밀었다. “잡아. 널 내 방으로 데려가야겠어. 그 무릎을 싸매야 해.”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혹시 네가 작년에 내가 몰랐던 기적의 치료법이라도 발견했다면 또 모르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그 팔을 잡았다.
“빌어먹을, 바이올렛. 빌어먹을.” 그는 내 팔을 조심스럽게 자기 옆구리에 끼우더니, 빈 손으로 내 배낭을 집어들고 앞장서서 외벽 끝에 있던 터널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나는 터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촛대 안에서 마법 불빛이 깜박거리다가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꺼졌다.
“넌 여기 오면 안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