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어.” 이젠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으니 나도 살짝 다리를 절룩였다.
“서기 분과에 들어가기로 했잖아.” 데인은 나를 데리고 터널을 통과하면서 법석을 떨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라이더 분과에 자원했다는 소리 는 하지 말아줘.”
“어떻게 된 것 같아?” 트롤… 아니면 드래곤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철제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맞혀보라고 물었다.
데인은 작게 욕을 했다. “네 어머니로군.”
“내 어머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른게일은 모두가 라이더인 거 몰랐어?”
우리는 원형 계단에 도착했다. 데인은 앞장서서 1층과 2층을 지나치더니 3층에 멈춰서 또 다른 출입문을 열었다. 삐걱이는 쇳소리가 났다.
“여긴 2학년 층이야.” 데인이 조용히 설명했다. “즉….”
“내가 여기 올라오면 안 된다는 뜻이겠지, 당연히.” 나는 좀 더 바싹 붙었다.
“걱정하지 마. 혹시 누가 우릴 본다면 내가 첫눈에 욕망에 휩싸인 나머지 네 바지를 벗길 때까지 1초도 더 기다릴 수 없었다고 말할게.”
“언제나 참 똑똑하기도 하지.” 우리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고, 데인은 입술을 당겨 쓴웃음을 지었다.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네 방에 들어가면 ‘오, 데인!’ 소리도 몇 번 외쳐줄 수 있어.” 이 제안은 진심이었다.
데인은 코웃음을 치면서 내 배낭을 나무 문 앞에 내려놓더니, 문고리 앞에서 손으로 돌리는 동작을 취했다.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능력을 가졌구나.” 내가 말했다.
데인은 코웃음을 쳤지만, 문을 열려고 내 손 위를 잡으면서 뺨이 살짝 붉어지기는 했다.
“선배 상대라고 혀가 무뎌지지 않은 걸 보니 기쁘다, 바이.”
“오.” 나는 복도로 걸어나가면서 어깨를 돌려보았다.
“나야 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알게 되면 놀랄걸.” 나는 아플 정도로 크게 웃음 지었고, 잠깐이지만 우리가 라이더 분과에 있다는 사실이나 내가 방금 난간다리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잊었다.
데인의 눈이 열기를 띠었다. 데인도 잊었나 보다. 미라는 항상 라이더들이 이 벽 속에 숨어서 욕망을 억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일까지 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자기 욕망을 부정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널 여기서 내보내야 해.” 그는 머리를 맑게 해야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더니 다시 허공에 손짓하자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빠르게 계단에 이르렀다.
“고마워.” 나는 내려가면서 말했다. “무릎이 훨씬 낫네.”
“너희 어머니가 널 라이더 분과에 집어넣었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데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실제로 만질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는 옆에 난간이 없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한 계단만 잘못 디뎌도 끝일 텐데.
“나도 마찬가지야. 어머니는 지난봄에 내가 1차 입학시험에 통과하자마자 분과를 결정했고, 난 그때부터 바로 길스테드 소령님과 훈련을 시작했어.” 소령님이 내일 두루마리를 확인하고 내가 사망자 명단에 없는 걸 알면 정말 뿌듯해 하겠지.
“이 계단 밑바닥, 본관 층보다 더 아래에는 협곡 건너편에 있는 힐러 분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어.” 1층이 가까워지자 데인이 말했다.
“거길 통해서 널 서기 분과에 들여보내야겠어.”
“뭐?” 나는 발이 본관 층의 반질반질한 계단참을 때리자마자 멈춰섰지만, 데인은 계속 내려갔다.
데인은 아래로 세 계단이나 내려가고 나서야 내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서기 분과 말이야.”
이 각도에서는 내가 더 높은 곳에 있었기에 데인을 내려다보았다. “난 서기분과에 못 가, 데인.”
“뭐라고?” 데인의 눈썹이 확 치솟았다.
“어머니가 용납하지 않을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데인은 입을 열었다가 닫고 옆구리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곳은 널 죽일 거야, 바이올렛. 넌 여기에 계속 있을 수 없어. 모두가 이해할 거야. 넌 자원하지 않았어. 실제로는 아니었지.”
그의 말에 순간 분노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데인을 향해 눈매를 좁히며 사실 여부를 무시하고 쏘아붙였다.
“첫째, 난 여기에서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데인. 그리고 둘째, 보통 지원자의 15퍼센트가 난간다리를 통과하지 못하는데 난 지금 여기에 서 있어. 그러니까 이미 그 확률 을 극복하고 있는 셈이야.”
데인이 한 계단 올라섰다. “네가 여기까지 끝내주게 잘해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바이. 하지만 넌 떠나야 해. 대련장에 들어가자마자 깨질 텐데, 그건 심지어 드래곤들을 보기도 전이고. 드래곤은 네가 어떤지 감지할 거야….” 그는 고개를 저으며 턱에 힘을 주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어떤데?” 목덜미 털이 곤두섰다. “마저 제대로 말해. 드래곤들이 내가 다른 생도보다 못하다는 걸 감지할 거라고? 그런 뜻이야?”
“빌어먹을.” 데인은 짧게 쳐낸 밝은 갈색 곱슬머리를 손으로 쓸었다. “자꾸 말꼬리 잡아서 몰아세우지 마. 내 말뜻 알잖아. 설령 네가 탈곡에서 살아남는다고 쳐도 드래곤이 너와 계약한다는 보장은 없어.
작년만 해도 계약을 맺지 못한 생도가 서른넷이나 있는데, 걔들은 다시 한번 계약할 기회를 얻으려고 이번 학기가 시작하기만 기다렸어. 모두가 완벽하게 건강한 데다가….”
“재수 없게 굴지 마.” 어쩐지 뱃속이 쓰렸다. 그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고 해서 내가 그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소리도 듣고 싶지도 않았고.
“난 널 살리려는 거야!” 데인의 고함 소리가 계단 벽에 부딪쳐 메아리쳤다.
“지금 널 서기 분과에 데려가기만 하면, 넌 여전히 서기 시험에서 수석하고도 남을 거고, 그 사람들에게 늘어놓을 끝내주는 이야깃거리도 생긴 셈이야. 내가 널 데리고 다시 저기로 나가면….” 그는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가리켰다.
“내 손을 벗어난 일이 돼. 여기에서 난 널 지킬 수가 없어. 완전히는 못 지켜.”
“그래 달라고 하지도 않아!” 잠깐만… 데인이 날 지켜주길 바랐던가? 미라가 그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날 뒷문으로 빼돌리고 싶었다면 왜 리애넌을 시켜서 날 너희 반에 넣게 한 거야?”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미라를 제외하면 데인은 이 망할 대륙 전체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데인마저 내가 여기에서 버티지 못할 거 라고 확신했다.
“걜 보내야 널 빼돌릴 수 있으니까!” 데인은 두 계단을 올라서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혔지만 그의 어깨에는 구부정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결단이라는 단어에 물리적인 형태가 있다면 바로 지금의 데인 에이토스일 것이다. “
내가 절친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 같아? 네가 소른게일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작자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지켜보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가죽옷을 입는다고 라이더가 되진 않아, 바이. 그 작자들은 널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고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다면 드래곤이 그럴 거야.
라이더 분과에서는 졸업하거나 죽거나 두 가지 결말뿐이라는 걸 너도 알잖아. 내가 널 구하게 해줘.”
데인의 자세 전체에서 힘이 빠졌고, 그 눈동자에 담긴 탄원은 내 분노마저 찢어놓았다. “제발, 내가 널 구하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