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못 구해.” 나는 속삭였다. “어머니는 날 바로 다시 집어넣을 거라고 했어. 내가 라이더가 되지 않으면 돌에 새긴 이름이 되어서야 여길 나갈 거야.”
“진심은 아니셨을 거야.” 데인이 고개를 저었다. “진심일 리가 없어.”
“진심이야. 미라 언니조차도 말리지 못했어.”
데인은 내 눈을 탐색하더니 진실을 본 것처럼 몸을 굳혔다. “망할.” “그래. 망했다니까.” 나는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게 내 인생이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 데인이 이 정보에 맞춰 마음가짐을 바꾸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 일단은, 가자.” 그는 내 손을 잡고 아까 들어왔던 벽감으로 향했다. “저기로 나가서 다른 1학년들을 만나. 나는 돌아가서 망루 문으로 들어갈게.
어차피 다들 우리가 아는 사이라는 걸 금세 알게 되겠지만 누구에게도 굳이 정보를 주지는 마.” 그는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가 놓고는 말 없이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배낭끈을 잡고 햇빛이 아롱진 앞마당으로 걸어갔다. 하늘엔 구름이 갈라지고 있었고, 라이더와 라이더 생도들을 향해 자갈을 밟으며 걸어가는 사이에 비가 완전히 걷혔다.
라이더 천 명도 쉽게 수용할 만큼 거대한 안마당은 딱 아카이브에 기록된 지도 그대로였다. 뾰족한 눈물 모양으로 둥근 쪽은 두께 3미터가 넘는 커다란 외벽으로 이뤄졌다. 양옆을 따라서는 석조 건물들이 있었다.
나는 끝이 둥근 형태로 산속에 파고 들어간 4층짜리 건물이 학예동이고 그 아래 절벽 위에 우뚝 선 건물이 기숙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데인이 나를 데려갔던 건물이기도 했다.
두 건물을 연결하는 웅장한 로톤다는 천장에 돔을 얹은 원형 건물로 강당과 공용 구역, 그리고 그 뒤의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다. 나는 얼빠진 듯이 바라보다가 외벽을 마주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난간다리 오른쪽에 돌로 만든 연단이 하나 있었는데, 생도대장과 부생도대장이 완전한 군복을 갖춰 입고 햇빛 아래 훈장을 반짝이고 있었다.
점점 불어나는 사람들 속에서 리애넌을 찾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리애넌은 새까만 머리카락을 데인처럼 짧게 자른 다른 여자와 이야기 중이었다.
“거기 있었구나!” 리애넌의 미소에는 진실함과 안도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걱정했어. 전부….” 리애넌이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
“준비 완료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여자 쪽으로 몸을 돌려 리애넌의 소개를 받았다. 그 생도의 이름은 타라, 북쪽의 에메랄드 바닷가에 있는 모레인 지방 출신이었다.
미라처럼 자신만만한 분위기가 흘러넘쳤고, 리애넌과 어릴 때부터 드래곤에 얼마나 집착했는지에 대해 떠들 때는 흥분해서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나는 우리가 동맹을 맺어야 할 경우에 필요한 사항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만 관심을 두고 대화를 들었다.
여기에서도 들을 수 있는 바스지아스의 종소리에 따르면 한 시간이 흐르고 또 한 시간이 흘렀다. 그제야 마지막 생도 세 명이 안마당으로 걸어 들어왔고, 바깥 망루에 있던 라이더 세 명이 뒤따랐다.
그 셋 중 하나는 제이든이었다. 이 많은 사람 속에서도 제이든이 눈에 띄는 건 단순히 키가 커서만은 아니었다. 다른 라이더들은 마치 상어와 마주친 작은 물고기들처럼 그를 피하는 듯 보였다. 잠깐이지만 나는 그의 고유 능력, 그가 드래곤과 계약해서 얻은 특별한 능력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혹시 그 능력 때문에 3학년들조차도 치명적으로 우아하게 연단으로 걸어가는 제이든 앞에서 비켜서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제 앞쪽에는 총 열 명이 있었고, 팬첵 생도대장이 우리를 보고 앞으로 나섰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 내가 리애넌과 타라에게 말하자 둘 다 연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모두가 그랬다.
“오늘, 301명이 난간다리에서 살아남아 생도가 됐다.” 팬첵 생도대장은 우리 쪽을 손짓하면서 정치가의 미소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 사람은 항상 손을 움직이면서 말을 했다. “잘했다. 67명은 해내지 못했다.”
내 두뇌가 잽싸게 계산하는 중에도 가슴이 죄어들었다. 거의 20퍼센트였다. 비 때문이었을까? 바람 때문이었을까? 평균보다 더 많이 죽었다. 67명이 여기에 오려다 죽었다.
“저분한테는 이 자리가 발판에 지나지 않는대.” 타라가 소곤거렸다. “다음에는 소른게일 장군의 자리를, 그다음에는 멜그렌 장군 자리를 원한대.”
멜그렌 장군은 나바르 전군의 총사령관이다. 어머니 때문에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멜그렌 장군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 매번 몸이 움츠러들었다.
“멜그렌 장군의?” 리애넌이 반대쪽에서 속삭였다. “절대 그 자리엔 못 가.” 생도대장이 라이더 분과에 온 우리를 환영하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멜그렌 장군의 드래곤은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는 고유 능력을 선사했어. 그런 능력을 이길 수는 없지. 미리 안다면 암살도 불가능하고.”
“코덱스에 이르다시피, 너희는 이제 진정한 시련의 장을 시작한다!” 팬첵의 커다란 목소리가 이 안마당에 모인 500여 명의 우리들에게 전해졌다. “너희는 선배의 시험을 받고 동급생에게 사냥당하며 본능의 인도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탈곡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리고 드래곤의 선택을 받는다면 너희는 라이더가 된다. 그때 우리는 너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졸업하게 되는지 두고 볼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졸업까지 살아남는 사람의 수는 4분의 1 정도였고, 해마다 몇 명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라이더 분과에는 지원자가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 이 안마당에 있는 모든 생도가 자신만은 엘리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나바르 최고의 군인… 드래곤 라이더가 될 수 있다고. 아주 잠깐이지만 나도 어쩌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할 수도 있다고.
“교수들이 너희를 가르칠 것이다.” 팬첵은 학예동 문 앞에 늘어선 교수들을 손짓했다. “얼마나 잘 배울지는 너희에게 달렸다.” 이번엔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규율은 부대 단위에서 결정하며 비행단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혹시 내가 끼어들어야 할 경우에는….” 그의 얼굴에 천천히 불길한 미소가 번졌다.
“너희는 그런 사태를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만 너희를 비행단장들에게 맡기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가 있다면, 죽지 말아라.” 그는 부생도대장과 함께 연단을 내려갔다. 연단 위에는 라이더들만 남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얼굴에 흉터를 가진 갈색 머리 여자가 비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제복 어깨에 박힌 은색 가시들이 햇빛을 받아 번득였다.
“나는 나이라다. 분과 선임 비행단장이자 제1비행단장이지. 전대장과 대대장들, 위치로.”
리애넌과 나 사이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거칠게 밀치고 걸어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차례차례 걸어나가더니, 우리 앞에 50명 정도가 간격을 두고 대형을 이뤘다.
“비행전대와 비행대대야.” 나는 혹시 리애넌이 군인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봐 소곤거렸다. “4개 비행단에 각각 3개의 전대가 있고, 전대마다 3개 대대가 있어.”
“고마워.” 리애넌이 답했다. 데인은 제2비행단 구역에 섰는데, 나를 마주보면서도 용케 눈은 피했다.
“제1비행단! 발톱전대! 1대대!” 나이라가 외쳤다. 연단에 가까이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생도들, 이름이 호명되면 너희 반장 뒤에 대열 맞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