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없는 드래곤은 비극이다.
드래곤 없는 라이더는 시체다. ― 《드래곤 라이더 코덱스》 1조 1항
좆같은 그날이 왔다. 징병일. 그래서 오늘 아침 일출이 그토록 아름다웠나 보다. 내가 보는 마지막 일출일지도 모르기에. 나는 무거운 캔버스 배낭끈을 단단히 조이고, 지금까지 집이라 부르던 석조 요새의 널찍한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갔다. 소른게일 장군 집무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힘들어서 가슴팍이 오르내리고, 폐는 불타는 것 같았다. 6개월 동안 격렬한 체력 훈련을 받은 결과가 이 정도였다. 15킬로그램의 배낭을 지고 6층 계단을 간신히 오르는 능력. 제대로 좆됐다.
각자 선택한 분과에 입학하려고 정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천 명의 스무 살짜리들은 나바르에서 제일 똑똑하고 튼튼한 젊은이였다. 그중에서도 수백 명은 태어난 순간부터 엘리트가 될 기회를 노리며 라이더 분과에 지원할 준비를 했다. 나에겐 6개월밖에 없었는데….
계단을 다 오르니 이어지는 넓은 복도 양쪽에 줄지어 선 무표정한 경비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지나가자 눈을 피했는데,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무시당하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가능한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바스지아스 군사학교는… 누구에게도 친절한 곳이 아니다. 심지어 어머니를 사령관으로 두었다 해도 말이다.
힐러, 서기, 보병, 라이더로 구성된 네 개 분과 중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모든 나바르 장교는 이 잔혹한 벽 안에서 무기로 만들어지고 연마된다. 그리고 포로미엘 왕국과 그들의 그리폰 라이더들이 벌이는 맹렬한 침략 시도로부터 우리의 국경을 지켜야 했다. 약한 자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라이더 분과에서는 더 그렇다. 드래곤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걜 죽을 자리로 보내시는 거예요!” 익숙한 목소리가 장군 집무실의 두꺼운 나무 문을 뚫고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대륙에서 장군을 상대로 언성을 높일 만큼 어리석은 여자는 단 하나뿐인데, 그 사람은 원래 동부 비행단과 함께 국경에 있어야 했다. 바로 미라였다.
집무실 밖에서 대답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걘 가망이 없다고요!” 미라는 내가 무거운 문을 밀어 열다가 배낭 무게가 앞으로 쏠리는 통에 거의 넘어질 뻔한 순간에 소리쳤다. 망할.책상 뒤에 앉은 장군이 욕설을 뱉었고, 나는 진홍색 천을 씌운 소파 등을 붙잡고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이 꼴을 봐요, 엄마. 쟤는 배낭도 감당 못한다고요.” 미라가 내 옆으로 달려오면서 쏘아붙였다. “난 괜찮거든!” 굴욕감에 뺨이 달아오른 나는 억지로 몸을 바로세웠다. 전장에서 돌아온 지 5분도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부터 날 구하려고 하다니. 그야 넌 구해줘야 하는 애니까 그렇지, 멍청아.
내가 원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라이더 분과에 지원하는 개짓거리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죽고 싶은 바람은 없었으니까. 차라리 바스지아스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곧장 대다수의 징집병과 함께 육군에 가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배낭을 감당할 수 있고, 알아서 해낼 작정이었다.
“아, 바이올렛.” 힘센 두 손이 내 어깨를 떠받치고, 걱정에 물든 갈색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안녕, 미라 언니.” 나는 입가를 당겨 올리며 미소 지었다. 언니는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지 몰라도, 나는 몇 년 만에 언니를 보게 된 것만으로 기뻤다.
언니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내 어깨를 잡은 손가락이 나를 끌어안을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언니는 뒤로 물러서더니 몸을 돌려 내 옆에 서서 어머니를 마주했다.
“이러실 순 없어요.” “이미 결정된 일이다.” 어머니가 어깨를 으쓱이자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제복의 주름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마지막 순간에 집행 유예라니 어림도 없지. 자비 없기로 유명한 여자에게서 일말의 연민을 기대하거나 희망한 적도 없지만.
“그럼 취소해요.” 미라의 화가 점점 더 끓어올랐다. “얘는 평생을 서기가 되려고 훈련했어요. 라이더로 키워지지 않았다고요.”
“흠, 그야 물론 바이올렛은 네가 아니지. 그렇지 않나, 소른게일 중위?” 어머니는 얼룩 하나 없는 책상에 두 손을 짚고 몸을 살짝 앞으로 내밀더니, 육중한 책상 다리에 새겨진 드래곤 조각을 꼭 닮은 가늘게 뜬 눈으로 평가하듯 우리를 보았다. 엄청난 능력 같은 것이 없어도 어머니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스물여섯 살의 미라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키가 크고 오랜 시간 훈련했으며 수백 시간을 드래곤 등 위에서 보낸 덕에 자연스럽게 단련된 근육이 특히나 튼튼하고 강했다. 건강한 피부에서는 말 그대로 광채가 났고, 금갈색 머리카락은 어머니와 똑같이 전투용으로 짧게 깎았다. 단순히 외모만 비슷한 게 아니었다. 언니는 어머니와 똑같은 오만함과 자신이 ‘하늘’에 속한다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뼛속까지 라이더 그 자체였다.
언니는 모든 면에서 나와 달랐고,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젓는 어머니의 생각도 같았다. 일단 나는 키가 너무 작다. 몸은 너무 빈약하다. 내 몸에 그나마 존재하는 곡선이라도 근육이면 좋았을 텐데, 불충한 몸은 나를 민망할 정도로 취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횃대에서 너울거리는 마법 불빛 속에서 반질반질한 검은색 부츠를 반짝이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길게 땋아 늘어뜨린 내 머리끝을 잡더니, 어깨 바로 위에서부터 갈색 머리카락이 따뜻한 색조를 잃고 아래로 갈수록 서서히 강철 같은 은빛으로 변하는 부분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손을 놓았다.
“색이 흐린 피부에, 색이 흐린 눈동자, 색이 흐린 머리카락.” 어머니의 시선은 골수에서부터 내 자신감을 빨아냈다. “마치 열병이 네 힘과 함께 색을 다 훔쳐 간 것 같구나.” 어머니의 눈동자와 찌푸린 이마에서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이에게 너를 도서관에만 두지 말라고 했건만.”
나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를 죽일 뻔했던 열병에 대한 욕도, 어머니가 여기 바스지아스에 교수로 배정받고 아빠는 서기가 되었을 때 아빠가 나의 두 번째 집으로 삼았던 도서관에 대한 악담도,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전 그 도서관을 사랑해요.” 나는 반박했다. 아빠의 심장이 멈춘 지 1년이 넘었건만, 기록 보관소인 아카이브는 아직까지도 이 거대한 요새에서 집처럼 느껴지는 유일한 곳이자, 아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서기의 딸 같은 말이로구나.”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아빠가 살아 있던 시절의 어머니가 보였다. 좀 더 부드럽고, 좀 더… 하다못해 가족에게만은 친절했던 여자가.
“전 서기의 딸이니까요.” 허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에 나는 어깨에 멘 배낭을 미끄러뜨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을 나선 후 처음으로 제대로 숨을 쉬었다.
어머니가 눈을 깜박이자 좀 더 부드럽던 여자는 사라지고, 장군만 남았다.
“너는 라이더의 딸이고, 스무 살이며, 오늘은 징병일이다. 나는 네가 교육을 마치도록 해주겠지만, 지난봄에 말했듯이 내 자식이 서기 분과에 들어가는 꼴은 못 본다, 바이올렛.”
“서기가 라이더보다 급이 떨어지는 존재라서요?” 나는 라이더가 사회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위계의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투덜거렸다. 라이더와 계약한 드래곤이 재미로 사람을 구워버린다는 사실도 그 지위에 도움이 되겠지.
“그래!” 장군의 습관적인 평정이 잠시 깨졌다. “그리고 오늘 네가 감히 서기 분과로 가는 터널에 발을 들인다면, 내가 직접 그 우스꽝스러운 머리채를 뜯어내고 난간다리에 세우겠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는 원치 않았을 거예요!” 미라가 목이 시뻘개져서 대들었다.
“나도 너희 아버지를 사랑했다만, 그이는 죽었다.” 어머니는 날씨 예보라도 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러니 이제 뭘 그리 원할 리도 없겠지.”
나는 숨을 훅 들이마셨지만, 입은 다물었다. 지금 말다툼을 해봤자 소용없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내가 하는 말에 눈곱만큼도 신경 쓴 적이 없었고, 오늘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바이올렛을 라이더 분과로 보내는 건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예요.” 미라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에게 대들기를 멈추지 않았고, 좌절스럽게도 어머니는 그 점 때문에 언니를 존중했다. 완전한 이중 잣대. “얜 그만큼 강하지 않아요, 엄마! 올해만 해도 이미 팔이 부러졌던 데다가, 한 주 걸러 한 번씩 어딘가가 삐끗하고, 또 전투에서 얠 살려둘 만큼 큰 드래곤을 타기에는 키가 너무 작다고요.”
“진심이야, 언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두 주먹을 꽉 움켜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아주 적다는 걸 안다고 해도, 내 면전에 대고 모자라다고 해대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나보고 약골이라는 거야?”
“그게 아니야.” 미라는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저… 섬세하다는 거지.”
“그게 그거지.” 드래곤들은 ‘섬세한’ 여자들과 계약하지 않았다. 그런 대상은 태워버렸다.
“작기는 하지.” 어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오늘 아침에 내가 고심 끝에 고른 크림색 벨트 튜닉과 바지의 넉넉한 품을 눈여겨보았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젠 그냥 제 결점을 열거하는 건가요?”
“결점이라는 말은 한 적 없다.” 어머니는 언니를 돌아보았다. “미라, 바이올렛은 하루 오전에만 해도 네가 일주일 내내 겪는 것보다 많은 아픔에 대처한다. 내 자식 중에서 라이더 분과에서 살아남을 능력 있는 아이를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바이올렛이야.”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서울 정도로 칭찬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어머니 입에서 나오니 확신할 수 없었다.
“징병일에 얼마나 많은 라이더 후보가 죽죠, 엄마? 40명? 50명? 그렇게 자식을 하나 더 묻고 싶으세요?” 미라의 분노가 들끓었다. 그 순간 방 안의 온도가 훅 떨어졌다. 어머니가 드래곤인 에임시르와의 채널링을 통해 얻은 고유 능력이 폭풍인 탓이었다.
오빠를 떠올리자 가슴이 죄어들었다. 브레넌 오빠가 드래곤과 함께 남부의 티렌더 반역에 맞서 싸우다 죽은 후 5년 동안 아무도 그들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나를 참아냈고 미라 언니를 존중했지만, 브레넌은 사랑했다. 아빠도 그랬다. 아빠의 심장병은 브레넌이 죽은 직후에 시작됐다. 어머니는 턱을 악물고 방금 한 말을 응징할 듯이 미라를 노려보았다. 언니는 침을 꿀꺽 삼켰지만, 그래도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어머니.” 내가 말했다. “언니도 그런 뜻은….”
“나가게, 중위.” 어머니의 한마디가 차가운 집무실에 부드러운 수증기를 피워올렸다. “자네가 허락 없이 부대를 비웠다는 사실을 보고하기 전에 당장 나가.”
미라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한마디도 더 얹지 않고 군대식으로 정확하게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가는 길에 작은 배낭도 집어들었다.
어머니와 내가 둘만 있는 건 몇 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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