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가 심호흡을 하자 방 안의 온도가 올라갔다. “너는 입학시험에서 속도와 민첩성 분야에서 상위 25퍼센트에 들어갔다. 넌 잘해낼 거다. 소른게일은 모두가 잘해내지.” 어머니는 손등 끝으로 피부는 거의 건드리지 않으면서 내 뺨을 슬쩍 쓸었다.
“네 아버지와 어찌나 닮았는지.” 어머니는 그렇게 속삭이고 나서 헛기침을 하더니 몇 걸음 물러섰다. 정서적인 능력에 주는 공훈 훈장은 없나 보다.
“난 이제 3년 동안 네게 알은체할 수 없다.” 어머니는 책상 가장자리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바스지아스의 총사령관이자 학장으로서 너에게는 까마득한 상관이 된다.” “알아요.” 지금도 나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걱정거리 축에도 들지 못했다.
“네가 내 딸이라는 이유로 대우를 받을 일도 없다. 오히려 너를 증명하라는 압력이 더 심해지면 심해지겠지.” 어머니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잘 압니다.” 어머니가 명령한 이후 지난 몇 달간 나를 훈련시킨 사람이 길스테드 소령이라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더니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탈곡 때 계곡에서 보자, 지원자. 해 질 녘쯤에는 생도가 되어 있겠지만.” 아니면 죽었거나.
우리 둘 다 그 말은 하지 않았다. “행운을 비네, 소른게일 지원자.” 어머니는 사실상 물러가라는 명령과 함께 책상으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나는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집무실을 나섰다. 경비병 한 명이 내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저 사람은 미쳤어.” 미라는 복도 중앙, 경비병 두 명이 서 있는 자리 사이에서 말했다.
“경비병들이 언니가 한 말을 전할걸.”
“진작부터 알았을 텐데 뭘.” 미라는 이를 갈았다.
“가자. 지원자가 등록하기까지 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날아오면서 보니까 정문 밖에 기다리는 지원자가 수천 명이었어.” 미라는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돌계단을 내려가더니, 복도를 통과해 내 방으로 향했다. 아니… 예전에 내 방이었던 곳으로.
내가 나온 지 30분 만에 모든 물건이 상자에 담겨 구석에 쌓여 있었다. 단단한 바닥에 위장이 쏟아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맘대로 내 평생을 상자에 버리다니.
“어머니가 욕 나오게 효율적인 건 인정해줘야 해.” 미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쪽으로 돌아서더니 대놓고 평가하는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널 빼내도록 설득할 수 있길 빌었는데 말이야. 넌 라이더 분과에 어울리지 않아.”
“그 얘긴 이미 했잖아.”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몇 번이고 했어.” “미안.” 언니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바닥에 주저앉아서 배낭을 비웠다. “뭐하는 거야?” “브레넌 오빠가 나한테 해줬던 일.” 미라가 조용히 대답하자 슬픔에 나도 목이 메었다. “너 장검은 쓸 줄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무거워. 하지만 나도 단검을 쥐면 꽤 빨라.” 정말로 빨랐다. 나는 힘이 부족한 부분을 속도로 메꾸는 훈련을 했다.
“그럴 줄 알았어. 좋아. 자, 네 짐 내려놓고 그 끔찍한 부츠 벗어.” 미라는 가져온 물건들을 헤집더니, 나에게 새로운 부츠와 검은색 제복을 건넸다. “이걸 신어.”
“내 짐이 뭐가 문젠데?”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배낭을 내렸다. 미라는 바로 배낭을 열더니 내가 조심스럽게 싼 물건들을 다 헤집었다. “언니! 밤새 쌌단 말이야!”
“지금 넌 짐이 너무 많고, 그 부츠는 죽음의 덫이나 다름없어. 그렇게 바닥이 매끈한 걸 신었다간 좁은 난간다리 위에서 바로 미끄러져 떨어질 거야. 나한테 만약에 대비해서 네 발 크기로 만들어둔 고무바닥 라이더 부츠가 한 켤레 있어. 그리고 사랑하는 바이올렛, 이건 최악이구나.” 책들이 나무상자 근처로 날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봐, 난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챙길 수 있는데, 그건 꼭 가져가고 싶단 말이야!” 나는 미라가 다음 책을 던져버리기 전에 달려들어서 가까스로 내가 제일 아끼는 음산한 민담집을 구해냈다. “정말로 그것 때문에 죽고 싶니?” 미라는 엄한 눈으로 물었다. “들 수 있다니까!” 모든 게 엉망이었다. 나는 원래 서기가 되어 책에 평생을 바칠 예정이었다.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구석에 책을 던질 게 아니라.
“아니. 넌 못 들어. 넌 짐 무게보다 겨우 세 배가 나가는데, 건너가야 하는 난간다리는 폭이 약 45센티미터에 높이는 무려 지상에서 60미터고, 아까 봤을 때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어. 시험관들은 발이 조금 미끄러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 동생아. 넌 떨어질 거야. 떨어져서 죽을 거야. 자, 이제 내 말을 제대로 들을래? 아니면 내일 아침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래?”
내 앞에 보이는 라이더에게는 언니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이 여자는 영민하고, 교활하고, 조금은 잔인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흉터 하나만 달고 3년을 살아남았다. 그것도 잔혹한 라이더 선별 시험인 ‘탈곡’에서 자기 드래곤에게 얻은 흉터였다.
“이대로 가면 넌 또 하나의 묘비, 돌에 새겨진 또 하나의 이름이 될 뿐이야. 책은 버려.” “이 책은 아빠에게 받은 거야.” 나는 책을 가슴팍에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어린아이 같을 수도 있다. 그저 마법의 유혹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 모음에 불과한 데다가 심지어 드래곤을 악마처럼 그리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남은 건 그게 전부였다. 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둠을 행사하는 버러지인지 뭔지와 그자들의 와이번에 대한 전설? 그거라면 넌 이미 천 번은 읽지 않았어?”
“아마 그보다 더 읽었겠지.”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버러지가 아니라 베닌이야.” “하여간 아빠가 좋아하던 이야기들이란. 드래곤과 계약한 라이더도 아니면서 마력을 끌어내려고만 하지 않으면 네 침대 밑에 빨간 눈의 괴물들이 숨어서 기다리지도 않을 거고, 두 다리 달린 드래곤을 타고 널 잡아다가 어둠의 군대에 합류시키는 놈들도 없을 거야.” 미라는 내가 배낭에 쟁인 책 중에서 마지막 한 권을 꺼내 내게 건넸다.
“책은 버려. 아빠는 널 구할 수 없어. 그러려고 시도는 했지. 나도 그랬고. 결정해, 바이올렛. 서기로 죽을래, 아니면 라이더로 살래?”
나는 품에 안은 책들을 내려다보고 결정을 내렸다. “언니 정말 짜증나.” 나는 민담집을 구석에 내려놓았지만, 다른 책 한 권은 끌어안은 채 언니를 마주 했다.
“짜증날지는 몰라도 널 살려줄 사람이지. 그건 뭐에 쓰게?” 미라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사람 죽이는 데.” 나는 그 책을 언니에게 돌려줬다. 미라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좋아. 그 책은 가져가도 돼. 자, 내가 이 나머지 짐을 정리하는 동안 갈아입어.” 머리 위 높은 곳에서 종이 울렸다. 이제 45분 남았다. 나는 잽싸게 옷을 입었다. 확실히 내 몸에 맞게 만들어졌는데도 왠지 다른 사람 옷처럼 느껴졌다. 낙낙한 튜닉은 팔에 딱 붙는 검은 셔츠로, 헐렁한 바지는 몸의 선이 다 드러나는 가죽 바지로 바뀌었다. 그다음에는 미라가 셔츠 위에 입는 조끼 형태의 코르셋 끈을 묶어줬다.
“이래야 쓸리지 않지.” 미라가 설명했다. “라이더들이 전투에 입고 나가는 장비 비슷하네.” 그 옷이 상당히 멋있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내가 사기꾼처럼 느껴져서 문제지. 세상에, 이게 진짜라니. “바로 그거야. 지금 넌 전투에 나갈 거니까.”
가죽과 처음 보는 천의 조합이 가슴을 감싸고 어깨 위로 교차하면서 쇄골부터 허리 바로 아래를 덮었다. 나는 옆구리를 따라 대각선으로 꿰메어놓은 숨겨진 칼집을 만져보았다. “네 단검을 끼울 자리야.” “난 네 자루밖에 없는데.” 나는 바닥에 쌓인 단검들을 집었다. “더 얻게 될 거야.”
단검들을 칼집에 차례로 밀어넣자, 내 옆구리 자체가 무기로 변한 기분이 들었다. 기발한 디자인이었다. 옆구리도 그렇고, 허벅지에 붙은 칼집도 있으니 단검에 손을 가져가기가 편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나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마치 라이더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분은 여전히 서기 같았다.
몇 분 후에는 내가 쌌던 짐의 절반이 나무상자 위에 쌓였다. 미라는 불필요해보이는 물건, 감상적인 물건을 거의 다 버리고 내 배낭을 새로 쌌다. 동시에 라이더 분과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계속 토해냈다. 그러고 나서 미라는 가장 감상적인 행위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내 머리를 땋아서 틀어 올려줄 테니 자기 다리 사이에 앉으라고 한 것이다. 다시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따랐다. “이건 뭐야?” 나는 심장 위치에 붙은 물질을 손톱으로 긁어보았다. “내가 설계한 물건이지.” 미라는 내 머리카락을 아프도록 잡아당겨 땋으면서 설명했다. “널 위해서 특별히 우리 테인의 비늘을 꿰매 만들었으니까 조심하도록 해.” “드래곤 비늘이라고?” 나는 고개를 젖혀 언니를 보았다. “어떻게? 테인은 거대하잖아.”
“내가 우연히 큰 물건을 아주 작게 만들 수 있는 고유 능력을 지닌 라이더를 알게 되었거든.” 미라의 입가에 엉큼한 미소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작은 물건은… 아주, 아주 크게 만들 수 있지.”
나는 눈을 굴렸다. 미라는 언제나 자기 남자들에 대해 나보다 드러내며 말했다. 내게 남자라고 해봐야 둘밖에 없었지만. “얼마나 더 크게 말이야?” 미라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내 머리를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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