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르 내의 평화 유지를 위하여, 반역의 인장을 가진 생도는 어느 분과의 어느 대대에도 세 명 넘게 배정하지 않는다.
― 바스지아스 군사학교 행동수칙, 부칙 5.2
작년의 변화에 덧붙여, 이제 낙인자들이 세 명 넘게 모일 경우에는 반정부 음모 행위로 간주할 것이며 따라서 사형죄임을 선언한다.
― 바스지아스 군사학교 행동수칙, 부칙 5.3
“망할.” 나는 발가락을 돌부리에 찧고는 성채 아래 강가를 따라 허리 높이까지 자란 풀밭 속에서 비틀거렸다. 환한 보름달이 앞길을 비췄지만, 그건 내가 통금 시간 이후에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볼까 봐 몸을 감추느라 걸친 망토 속에서 쪄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아코보스 강은 여름마다 저 위 산봉우리에서 물이 콸콸 흘러 내렸기에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흐름이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특히 협곡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곳에서는 더 심했다. 어제 휴식시간에 강물에 빠진 1학년이 죽은 것도 당연했다. 난간다리 시험 이후로 아무도 잃지 않은 대대는 우리뿐이었지만, 이 무자비한 학교에서는 그 기록도 오래가지 못할 게 뻔했다.
나는 삼각붕대 위로 무거운 가방을 단단히 메고 강에 더 접근했다. 여기 늘어선 오래된 참나무들 사이에서는 곧 포닐리 열매 넝쿨이 제철을 맞이할 것이다. 익으면 자줏빛이 되는 그 열매는 맛이 떫어서 먹을 만한 게 못되지만 일찍 따서 말려두면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9일 동안 밤에 몰래 빠져나가면서 내 무기고는 점점 불어났다. 이래서 내가 독물학 책을 가지고 온 거지.
본격적인 시합은 다음 주부터 시작이니까 나에게는 가능한 한 모든 이점이 필요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경계 표시로 이용해온 바윗돌을 찾아내고 강둑에 선 나무들의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속삭이면서 나에게 필요한 참나무를 찾았다. 그 나무는 가지가 넓고 높게 뻗어나갔고, 그중에는 강 위까지 뻗은 가지도 있었다. 다행히도 제일 낮은 가지를 쉽게 기어오를 수 있었다. 아래쪽 풀이 이상하게 짓밟혀 있으니 더 쉬웠다.
오른팔을 삼각건에서 빼내 달빛과 기억에 의지해서 나무를 타기 시작하자 날카로운 아픔이 어깨를 쑤셨다. 매트 위에서 리애넌에게 호된 훈련을 받는 매일 저녁마다 그랬듯이 날카로운 아픔은 곧 둔한 아픔으로 사그라들었다.
부디 내일은 놀론이 이 짜증나는 삼각건을 영영 떼어내주기를.
나무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는 포닐리 덩굴은 교묘하게 담쟁이와 닮았지만, 이 나무를 여러 번 올라본 나는 이게 포닐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망토를 걸친 채로 나무를 올라야 했던 경험이 없을 뿐이다. 엄청나게 성가셨다. 몇 시간씩 책을 읽으며 보내던 넓은 가지를 지나서 천천히 꾸준하게 올라가는 동안에도 망토가 가지마다 걸렸다.
“아, 씨!” 발이 나무껍질에 미끄러지며 더 나은 발판을 찾지 못하자 심장이 잠시 덜컥거렸다. 낮이었다면 훨씬 쉬웠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걸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더 높이 올라가자 나무껍질이 손바닥을 긁었다. 이 높이에서는 덩굴 잎사귀 끝이 하얘서 달빛에 얼룩덜룩해진 나뭇잎 사이에서 가려내기가 힘들었지만, 마침내 정확히 원하던 걸 찾아내고 히죽 웃었다.
“여기 있구나.” 자줏빛 열매는 아직 덜 익어서 멋진 라벤더색이었다. 완벽했다. 나는 위쪽 가지에 손톱을 박아 넣고, 잠시나마 흔들림 없이 버틴 채 가방에서 빈 유리병을 꺼내 이로 코르크를 여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에는 덩굴에 달린 열매를 따서 유리병을 채우고 다시 마개를 닫았다. 이 열매와 오늘 밤에 이미 수확한 버섯들,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놓은 다른 물건들이 있으면 다음 달 대련은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무를 거의 다 내려갈 때쯤 아래쪽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멈췄다.
부디 사슴이면 좋겠는데. 아니었다.
오늘 밤 유행하는 변장 도구인가.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그림자 둘이 나무 아래로 걸어왔다. 키가 작은 쪽이 제일 낮은 가지에 기대더니 후드를 젖혀서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반삭발을 한 분홍 머리를 드러냈다.
10일 전에 내 팔을 뜯어낼 뻔했던 비행대대 동료, 이모젠이었다. 뱃속이 조여들었는데 두 번째 라이더가 후드를 젖히자 뱃속이 조여들다 못해 아예 내장이 굳는 것 같았다.
제이든 라이오슨이었다.
망할.
우리 사이의 거리는 5미터도 되지 않았고, 이 바깥에는 제이든이 나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포가 내 목을 꽉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나뭇가지를 잡은 채로 제이든이 내 소리를 듣지 못하게 숨을 멈추는 것과 그러다가 산소 부족으로 기절해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을지 고민했다.
둘이 대화하기 시작했지만, 콸콸 흐르는 강물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들을 수는 없었다. 안도감이 내 폐를 채웠다. 내가 저 둘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저들도 내 소리를 듣지 못할 테니까.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말이다.
만약 제이든이 위를 올려다본다면 나는 통구이가 되겠지. 나를 자기의 블루 대거테일에게 먹이기로 한다면 말 그대로 통구이가 될 것이다. 몇 분 전만 해도 고마웠던 달빛이 이제는 제일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조용히 달빛을 벗어나 옆 나뭇가지로 이동해서 어둠에 몸을 숨겼다. 제이든은 밖에서 이모젠과 뭘 하는 걸까? 둘이 연인 사이인가? 친구 사이인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저런 여자를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기보다 잔혹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여자 말이다. 제기랄, 둘이 잘 어울리긴 하네.
제이든은 누군가를 찾듯이 강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과연 라이더들이 더 도착해서 나무 아래에 모두 모였다. 다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채로 악수를 나눴다. 모두가 반역의 인장을 갖고 있었다.
숫자를 세어보니 눈이 저절로 커졌다. 거의 스물다섯 명에 가까웠는데, 몇 명은 3학년과 2학년이었지만 나머지는 다 1학년이었다. 나는 규칙을 잘 알고 있다. 낙인자들은 3인 이상 모일 수 없다. 그들이 같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 사형죄다. 이건 분명히 모종의 모임이다. 나는 늑대들이 아래에서 맴도는 동안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무해한 모임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 쟤들도 향수병을 느끼는 걸지도 몰라. 모레인 지방에서 온 생도들은 그리운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근처 호수에서 토요일을 다 보내잖아. 아니면 낙인자들이 바스지아스를 뿌리까지 태워버리고 부모가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려고 음모를 짜고 있을지도.
나는 여기 앉아서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무서워서 가만히 있다가 혹시라도 저들이 그 길을 간다면 사람들이 죽는 사태를 막지 못할 것이다. 데인에게 말하는 게 맞겠지만,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조차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속이 메스꺼웠다. 그들에게 더 가까이 가야 한다. 나는 나무줄기 반대편에서 철저히 어둠에 감싸인 채 나무늘보 같은 속도로 나뭇가지 하나를 더 내려갔다. 숨을 참고 몸무게를 살짝 실어서 시험해본 후에야 가지에 몸을 내렸다.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는 강물 소리에 가려졌지만 그래도 제일 큰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창백한 피부의 키 큰 검은 머리 남자였는데, 어깨가 여느 1학년의 두 배는 넓었다. 제이든 맞은편에 선 그는 3학년 표식을 달고 있었다.
“우린 이미 서덜랜드와 루페코를 잃었어.” 그 남자가 말했는데 답변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두 단 더 내려가고 나서야 말이 제대로 들렸다.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갈 듯이 쿵쾅거렸다. 나는 이제 누구든 집중해서 보기만 하면 발견할 만큼 가까웠다. 음,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제이든만 빼면 누구든.
“좋든 싫든 졸업까지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한데 뭉쳐야 해.” 이모젠이 말했다. 오른쪽으로 살짝만 뛰면 이모젠의 머리를 재빨리 걷어차서 그녀가 나에게 안겨준 어깨 부상을 되갚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 순간에는 복수보다 목숨이 더 소중했기에 나는 발을 가만히 두었다.
“그러다가 놈들이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을 알아내면?” 올리브색 피부의 1학년 여자가 원을 그리고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2년 동안 이렇게 모였는데도 놈들은 알아채지 못했어.” 제이든이 팔짱을 끼고 내 오른쪽 아래 가지에 등을 기대며 대꾸했다. “너희 중 누군가가 말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모를 거야. 그리고 너희가 말한다면 내가 알겠지.”
말투만으로도 위협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개릭이 말했듯이 이미 우린 부주의하게 1학년 두 명을 잃었다. 라이더 분과에서 우리는 겨우 41명뿐이고 더는 잃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너희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더 잃게 되겠지. 확률은 언제나 우리에게 불리하고, 장담하는데 분과에 소속된 다른 나바르인들은 언제든 너희를 배신자라고 부르거나 실패하게 만들 이유를 찾을 거다.”
웅성웅성 동의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제이든의 목소리에 담긴 격렬한 감정에 숨이 가빠졌다. 망할, 제이든 라이오슨에 대해 감탄할 구석은 하나도 알고 싶지 않건만 여기에 있는 그는 짜증나도록 존경스러웠다. 개자식.
인정해야겠지. 우리 지방 출신의 라이더가 나머지 동향 사람들의 목숨에 신경 쓴다면 좋긴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