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 시간에 두들겨 맞은 사람은 몇이지?” 제이든이 물었다.
네 개의 손이 올라갔는데, 그중에 팔짱을 끼고 선 삐죽삐죽한 금발의 1학년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금발의 리암 메이리는 우리 비행단의 꼬리전대 1대대였는데, 이미 1학년 최고 생도였다. 난간다리는 말 그대로 뛰어서 건넜고 평가일에는 모든 적수를 박살냈다.
“젠장.” 제이든이 욕을 하자, 어쩐지 나는 그가 얼굴에 손을 올릴 때의 표정을 볼 수 있다면 뭐든 할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덩치 큰 남자 개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가르칠게.” 자세히 보니 제 4비행단 불꽃전대의 지휘관이었다. 즉 내 직속상관인 데인의 직속상관이다. 제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넌 우리 최고의 싸움꾼이야.”
“최고 싸움꾼은 형이지.” 제이든 근처에 서 있던 2학년이 슬쩍 웃으며 맞받아쳤다.
잘생긴 남자였는데, 황갈색 피부에 마치 구름 같은 검은색 곱슬머리에 망토 아래 보이는 제복에는 패치가 잔뜩 붙어 있었다. 제이든과 친척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이목구비가 닮았다.
사촌이려나? 내 기억이 맞다면 펜라이오슨에게 누이가 있었지. 젠장, 그 사람 이름이 뭐였지? 몇 년이나 기록을 읽었는데 아마 B로 시작하는 이름일 것이다.
“제일 비열한 싸움꾼이긴 하겠지.” 이모젠이 신랄하게 말했다.
거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1학년들마저도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는 존나 무자비하다는 게 맞지.” 개릭이 덧붙였다.
대체로 찬성하는 듯 고개들을 끄덕였다. 리암 메이리까지 그랬다.
“개릭이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싸움꾼이지만 이모젠도 그에 맞먹고 훨씬 더 인내심이 있지.” 제이든의 평이 터무니 없는 소리로 들렸다. 내 팔을 부러뜨릴 때는 인내심이라곤 없어 보이던데.
“그러니까 너희 넷은 둘씩 나뉘어 저 둘에게 훈련을 받아라. 세 명이 모이는 정도로는 원치 않는 관심을 끌지 않을 거야. 달리 또 골칫거리는?”
“난 못하겠어.” 호리호리한 1학년 한 명이 어깨를 구부정하게 움츠리고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얼굴로 올리면서 말했다.
“무슨 뜻이지?” 제이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못하겠다고!” 1학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죽음이며, 싸움이며, 하나도 못 하겠어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평가일에는 어떤 놈이 내 앞에서 목이 꺾여서 죽었어! 난 집에 가고 싶어! 그것도 도와줄 수 있어?”
모두가 제이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제이든은 어깨를 으쓱였다. “넌 못 버티겠군. 지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시간을 더 빼앗지 않는 게 최선이겠다.”
나는 헉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고, 모여 있는 사람 중에 몇 명은 굳이 충격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뭐 저런 재수 없는 놈이 있담. 1학년은 한 대 맞은 표정이었고, 나로서는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조금 모진 말이었어.” 제이든을 닮은 2학년이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말하면 좋겠는데, 보디?” 제이든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차분하고 고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두를 구할 순 없어. 특히나 스스로를 구하려는 의지도 없는 사람은 더욱 더.”
“망할, 제이든.” 개릭이 콧잔등을 문질렀다. “격려하는 방법도 있잖아.”
“우리 둘 다 격려의 말이 필요한 놈들이 졸업일에 날아서 떠나지 못한다는 걸 알잖아. 현실적으로 굴자. 그런 걸로 마음 편해진다면 나도 손을 잡고 모두가 해낼 수 있다는 공허한 약속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내 경험 상으로는 진실이 훨씬 더 가치 있다.”
제이든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가 공황상태에 빠진 1학년을 쳐다보고 있겠거니 짐작할 수만 있었다.
“전쟁에선 사람들이 죽는다.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영광스럽지도 않지. 목이 꺾이고 60미터를 떨어지는 일이라고. 불타는 땅과 유황 냄새에도 낭만적인 구석 따윈 없어. 이건….” 그는 뒤쪽 성채를 가리켰다.
“모두가 살아서 나가는 동화 같은 게 아니야. 무정하고, 차갑고, 냉담한 현실이지. 여기 있는 모두가 집으로 가진 못 해. 우리 고향의 남은 부분이 얼마나 되든 간에. 그리고 오해하지 마라. 우리는 이 분과에 발 들인 모든 순간 에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살기 위해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그래. 너희는 살아남지 못할 거다.”
정적 속에 귀뚜라미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자, 누구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말해봐.” 제이든이 명령했다.
“전투 브리핑 시간이요.” 내가 얼굴을 아는 1학년이 조용히 말했다. 그 생도의 침대는 리애넌과 내 침대에서 한 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쯧… 이름이 뭐였더라? 모두를 알기에는 막사에 여자가 너무 많았지만 분명히 제3비행단 소속이기는 했다.
“따라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정보는….”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건 힘들긴 하지.” 이모젠이 제이든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달빛에 비친 그 옆모습은 내 어깨를 부숴놓은 사람과 전혀 달라 보였다. 그 이모젠은 잔인하고 악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제이든을 쳐다보는 이모젠의 눈과 입은 부드러웠고 짧은 분홍색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자세도 그랬다.
“그자들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배워야지.” 제이든은 진지한 목소리로 1학년에게 말했다. “네가 아는 내용을 간직하되 그자들이 말하는 내용을 외워.”
내 이마에 주름이 졌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 전투 브리핑은 우리 분과에서 기밀이 아닌 부대 이동과 전선에 관한 최신 정보를 알 수 있게 서기들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우리에게 외우게 하는 내용은 최전선 근처에서 벌어진 최근 사건들과 일반 지식 정도였다.
“질문?” 제이든이 물었다. “지금 묻는 게 좋을 거다. 밤새 떠들 시간 없어.”
그 순간에야 나는 이들이 3명 이상 무리지어 만났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모도, 쿠데타도, 위험도 없었다. 그저 선배 라이더들이 같은 지방 출신의 1학년들을 상담해주는 모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데인이 안다면, 데인은….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언제 죽여?” 뒤쪽에 있던 남자 하나가 물었다.
내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