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날 밤늦게 돌아갔을 때쯤에는 막사가 거의 꽉 차 있었다. 욱신거리는 오른팔을 하늘색 삼각건에 매달고 있으려니 이전보다 더 큰 표적이 된 느낌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삼각건은 약하다는 뜻이다. 부러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비행단에 골칫거리라는 의미다. 이렇게 빨리 매트 위에서 뼈가 부러진다면 드래곤 등에 앉았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해는 진 지 오래였지만, 1학년 여자들이 잘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홀 안에는 부드러운 마법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내가 부어오른 입술에 피가 튄 천을 대고 있는 여자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는 찡그린 표정을 돌려줬다.
우리 줄에 빈 침대가 세 개 있었지만, 그 생도들이 죽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겠지? 나처럼 힐러 분과에 가 있을 수도 있고 욕실에 있을 수도 있다.
“왔어!” 이미 잠옷용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던 리애넌이 나를 보자 안도의 눈빛과 미소를 숨기지 않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그래, 왔어.” 나는 확언했다. “셔츠 하나는 벌써 버렸지만 왔어.”
“셔츠는 내일 중앙보급소에서 또 받을 수 있어.” 리애넌은 나를 끌어안을 듯했지만, 삼각건 붕대를 보더니 한 걸음 물러서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나도 리애넌을 마주보고 내 침대에 앉았다. “얼마나 나쁜 거야?”
“앞으로 며칠 동안 아프긴 하겠지만 움직이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야. 매트 위 시합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다 나을 거고.”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할지 생각할 시간이 2주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리애넌이 다짐했다. “넌 여기에서 내 유일한 친구니까 진짜 시합이 벌어질 때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 나는 욱신거리는 어깨와 팔의 통증 속에서 씩 웃었다. 약효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이제는 지옥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난 네 역사 공부를 도와줄게.” 왼손에 내 몸무게를 싣는데, 손이 베개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베개 밑에 뭔가가 있었다.
“우린 막을 수 없는 팀이 될 거야.” 리애넌이 우리 둘의 침대 옆을 지나치는 검은 머리의 타라를 눈으로 따라가며 선언했다. 타라는 모레인에서 온 끝내주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나는 작은 책을, 아니 일기장을 꺼냈다. 그 위에 미라의 손글씨로 ‘바이올렛’이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쪽지를 펼쳤다.
바이올렛,
오늘 아침에 명단을 읽어볼 만큼은 머물렀는데, 신들에게 감사하게도 네 이름은 없더라. 난 계속 있을 수 없어. 내 비행단으로 돌아가봐야 해. 설령 내가 남을 수 있었다 해도 어차피 널 만나게 해주진 않았겠지. 서기 한 명에게 뇌물을 줘서 이걸 네 침대에 넣어달라고 했어.
내가 네 언니라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알았으면 좋겠다. 브레넌 오빠도 내가 분과에 들어가기 전 여름에 이걸 써줬거든. 이 내용이 날 구했으니, 너도 구할 수 있을 거야. 여기저기에 내가 힘들게 얻은 지혜도 더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오빠가 쓴 내용이고, 오빠도 네가 이걸 갖고 있길 원했을 거야. 네가 살아남기를 원했을 거라고.
사랑한다, 미라
나는 목이 메이는 걸 꿀꺽 삼키며 쪽지를 챙겼다.
“뭔데 그래?” 리애넌이 물었다. “우리 오빠 물건이야.”
일기장을 여는데 그 말이 간신히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어머니는 오빠가 죽은 후에 전통에 따라 오빠 물건을 모두 태워버렸다. 오빠의 대담한 필적을 본 지가 까마득했는데 여기에 그게 있었다. 가슴이 조이고 새로운 슬픔이 온몸을 휩쓸었다.
“브레넌의 책.” 나는 첫 장을 읽고 나서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갔다.
미라,
너는 소른게일이니까 살아남을 거야. 나만큼 끝내주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가 내 기준에 맞출 수는 없지. 안 그래? 농담은 다 제쳐두고, 여기 내가 배운 모든 게 담겨 있어. 안전하게 지켜. 잘 숨기고. 바이올렛이 보고 있으니까 넌 꼭 살아야 해. 바이에게 네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브레넌.
눈물이 확 고였지만 눈을 깜박여서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냥, 오빠 일기장이야.” 나는 책장을 휙휙 넘겨보면서 거짓말을 했다. 오빠가 쓴 말들을 훑어보려니 익살스럽고 빈정거리는 말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바로 옆에 오빠가 서서 모든 위험을 윙크와 웃음으로 밝게 덧칠하는 것 같았다. 젠장, 오빠가 보고 싶었다.
“5년 전에 죽었거든.”
“아, 그게….” 리애넌이 공감이 짙게 담긴 눈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도 언제나 전부 다 태우진 않아. 때로는 뭔가를 갖고 있는 게 좋잖아. 그렇지?”
“응.” 나는 속삭였다. 이게 남아 있는 전부지만,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이것마저 불에 던져버릴 터였다.
리애넌은 침대에 기대앉아서 역사책을 펼쳤고, 나는 3쪽부터 시작되는 브레넌의 역사에 빠져들었다.
난간다리에서 살아남았구나. 다행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관찰력을 발휘하고 관심 끄는 행동은 하지 마. 내가 강의실이 어디에 있는지만 아니라 강사들이 어디에서 만나는지도 알 수 있는 지도를 그려놨어. 격투 시합이 불안하겠지만 네 오른손 훅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시합이 무작위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아. 강사들은 말해주지 않는데, 사실은 일주일 전에 도전자를 다 결정해, 미라. 어떤 생도든 도전을 요구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강사들은 제일 약한 생도들을 걸러내려는 목적으로 시합을 배정해. 그러니까 일단 진짜 격투가 시작되면 강사들은 이미 그날 네가 누구와 맞붙을지 안다는 뜻이지.
비밀은 바로 이거야. 어디를 봐야 할지 알고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누구와 싸울지 알아내서 준비할 수 있어.
나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 가슴속에 희망이 피어오르는 기분으로 나머지 내용을 허겁지겁 읽었다. 내가 누구와 싸울지 안다면 매트에 발을 딛기도 전에 싸움을 주도할 수 있다. 머릿속이 빙빙 돌면서 계획이 떠올랐다. 2주일, 본격적인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 나처럼 바스지아스 교내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게 이 안에 있다.
내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퍼졌다. 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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