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맞다.” 드베라가 잭의 말을 자르자 강의실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동부 비행단 소속의 드래곤 하나가 불안정한 보호막을 감지해서 비행단이 날아올랐다. 그러지 않았다면 사상자 수는 훨씬 많았을 거고 마을도 훨씬 심하게 파괴됐을 것이다.”
내 가슴속에 작은 자신감의 거품이 솟아오르다가, 잭이 노려보는 시선에 찔려 터졌다. 아무래도 잭은 날 죽이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2학년과 3학년, 이어받아라.” 드베라 교수가 지시했다. “너희는 동료 생도들을 좀 더 존중할 수 있는지 어디 보자.” 그녀가 잭을 보고 한쪽 눈썹을 들썩이는 사이, 우리 뒤쪽에 있는 라이더들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라이더가 몇 명이나 배치되었나? 사망자 한 명은 누가 죽였나? 마을에서 그리폰들을 치우는 데 얼마나 걸렸나? 심문할 수 있는 적은 몇 명이나 생포했나?
나는 모든 질문과 답을 적었다. 그러면서 서기 분과에 있었다면 그 사실들을 조합하여 어떤 보고서를 썼을지, 어떤 정보가 보고서에 포함시킬 만큼 중요하고 또 어떤 정보가 무관한지 생각했다.
“마을 상태는 어땠습니까?” 강의실 뒤쪽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몸이 등 뒤에 임박한 위협을 알아차리고는 목덜미 털을 세웠다.
“라이오슨?” 마컴이 손바닥으로 눈부신 마법 불빛을 가리고 강의실 맨 위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마을 말입니다.” 제이든이 다시 물었다. “드베라 교수님은 피해가 더 클 수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실제 상태는 어땠습니까? 마을이 불탔습니까? 파괴됐습니까? 놈들이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다면 마을을 없애지 않았을 테니 공격의 동기를 밝히려면 마을 상태가 중요합니다.”
드베라 교수가 칭찬하듯 미소 지었다. “비행단이 도착했을 때 놈들이 이미 빠져나간 건물들은 불타 있었고 나머지는 약탈당하는 중이었다.”
“뭔가를 찾고 있었군요.” 제이든이 절대적인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그게 재물은 아니었습니다. 보석을 채굴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무엇을, 놈들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느냐는 질문이 떠오르는군요.”
“바로 그거야. 그게 문제다.” 드베라 교수가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래서 라이오슨이 비행단장인 거다. 뛰어난 라이더가 되려면 힘과 용기 이상이 필요해.”
“그래서 답은 뭔가요?” 왼쪽에 있는 어느 1학년이 물었다.
“우리도 모른다.” 드베라 교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 또한 어째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평화를 구하려 하는데도 포로미엘 왕국이 거부하느냐는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지. 저들은 무엇을 찾고 있을까? 왜 저 마을일까? 보호막이 무너진 게 저들 때문일까, 아니면 보호막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을까?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에도 공격이 있을 테고, 그러면 우리도 또 다른 단서를 얻을지 모른다. 답을 찾고 있다면 역사를 보아라. 역사 속 전쟁들은 이미 해부하고 분석된 후다. 전투 브리핑 시간은 유동적인 상황을 다룬다. 이 수업에서 너희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모두가 집에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지를 배우기 바란다.”
그의 말 어딘가에서 올해는 3학년만 소집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전해지자 뼛속까지 한기가 스몄다.
“너 정말로 역사 수업의 모든 답을 아는구나. 전투 브리핑 시간에 물어볼 올바른 질문도 아는 것 같고.”
점심식사 후 리애넌은 나와 같이 대련용 매트 가장자리에 서서 격투용 가죽옷을 입은 리독과 오렐리가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리독과 오렐리는 몸집이 비슷했다. 리독이 좀 더 작은 편이었고, 오렐리는 딱 미라 언니 같은 몸이었다. 아버지 쪽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넌 시험공부도 할 필요 없지 않아?”
나머지 1학년들은 우리 쪽에 서 있고, 2학년과 3학년은 반대쪽에 있었다. 그들은 이미 1년 이상 전투 훈련을 받았으니 당연히 이 대련에서 유리한 입장이었다.
“난 서기 훈련을 받았어.”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 움직임에 따라 미라가 나에게 만들어준 조끼가 반짝거렸다. 위장용 그물망 아래 드래곤 비늘은 정통으로 빛을 받을 때만 아니면 어제 보급소에서 나눠준 상의와 잘 어우러졌다. 지금은 모든 여자들이 비슷하게 입었는데 가죽옷의 재단 형태만 취향에 따라 달랐다.
남자들은 대부분 웃통을 벗고 싸웠다. 셔츠를 입으면 적에게 붙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논리에 반대할 마음이 추호도 없이 풍경을 즐길 따름이었다…. 물론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는 건 우리 대대 매트에만 눈을 고정한 채, 학예동 1층을 다 차지하는 거대한 체육관에 즐비한 다른 20개의 매트는 쳐다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한쪽 벽을 이루는 창문과 문을 전부 열어놓고 바람을 들이는데도 숨 막히게 더웠다. 조끼 안에서 등골을 따라 땀이 흘렀다.
오늘 오후에는 각 비행단마다 3개 대대씩 와 있었는데, 내가 빌어먹게 운도 좋은지 제1비행단이 보낸 3개 대대에 잭 발로우가 포함되어 있어서 들어온 이후 줄곧 매트 두 개 너머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넌 머리 쓰는 수업은 걱정이 없는 거네.” 리애넌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리애넌도 가죽 조끼를 선택했지만, 그 조끼는 쇄골 위까지 파여 있어 목은 감싸는데 어깨는 움직이기 쉽게 드러낸 형태였다.
“댄스 파트너처럼 빙빙 돌기는 그만하고 공격해!” 에메테리오 교수가 매트 건너편에서 지시했다. 그곳에서는 데인도 우리 대대장인 시애나와 함께 오렐리와 리독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맙게도 데인은 셔츠를 입은 채였다. 내 차례가 됐을 때 신경을 흐트러뜨릴 요소가 하나는 줄었다는 뜻이다.
“난 이 시간이 걱정이야.” 나는 매트 쪽을 턱짓하며 리애넌에게 말했다. “진짜?” 리애넌은 회의적이라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땋은 머리는 작게 말아서 목 뒤쪽에 틀어 올린 채였다. “넌 소른게일이니까 격투에서 위협적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내 나이에 미라는 격투 훈련을 12년 동안 받은 후였다. 나는 나름대로 굉장한 6개월을 경험했지만, 내가 도자기 찻잔만큼 깨지기 쉬운 몸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린 이곳에 있었다.
리독이 오렐리에게 덤벼들었다. 오렐리는 몸을 숙여 피하면서 다리를 쭉 내밀어서 발을 걸었다. 리독은 비틀거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잽싸게 몸을 돌려서 손에 단검을 잡았다.
“오늘은 날붙이 금지다!” 에메테리오 교수가 매트 옆에서 외쳤다. 내가 만나본 교수라야 겨우 네 번째였지만 확실히 이 사람이 가장 위협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담당 과목 때문에 내가 그 작은 체구를 거대하게 보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평가만 하는 시간이야!”
리독이 툴툴거리면서 단검을 꽂아 넣고는 아슬아슬하게 오렐리의 오른쪽 훅을 피했다. “저 갈색 머리 펀치 좀 날리는데.” 리애넌이 감탄하는 미소로 말하고는 내 쪽을 흘긋 보았다.
“넌 어떤데?” 나는 리독이 오렐리의 갈비뼈에 잽을 먹이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썅!” 리독은 고개를 내젓고 한 걸음 물러섰다. “난 널 해치고 싶지 않아.” 오렐리는 자기 옆구리를 잡고 턱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네가 날 해친다고 누가 그래?”
“주먹에 힘을 빼는 게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짓이다.” 데인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북동쪽 국경에 있는 시그니슨 놈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봐주지 않을 거다, 리독. 적진에 들어가서 드래곤에서 떨어진다면 똑같이 죽겠지.”
“덤벼!” 오렐리가 손가락을 구부려 리독에게 손짓했다. 대부분의 생도가 이 분과에 들어오려 평생을 훈련한 건 분명했고, 오렐리는 특히 그랬다. 그녀는 리독의 잽을 흘려 보내고는 몸을 틀어서 그의 신장 쪽을 빠르게 때렸다. 으억.
“내 말은… 젠장.” 리애넌은 중얼거리면서 오렐리를 한 번 더 쳐다본 다음에 나를 돌아보았다. “난 매트 위에서 꽤 잘해. 우리 마을은 시그니슨 국경선에 있다 보니 모두가 꽤 어릴 때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거든. 물리학과 수학도 문제는 아니야. 하지만 역사학?”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역사 수업이 나한테는 죽을 자리일지도 몰라.”
“역사에 낙제한다고 죽진 않아.”
리독이 오렐리에게 달려들어서 매트에 넘어뜨리는데 보기만 해도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아. “난 아마 이 매트 위에서 죽을 거야.”
오렐리는 리독에게 다리를 얽고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를 지렛대로 삼아서 위로 올라가더니, 얼굴을 때리고 또 때렸다. 매트에 피가 튀었다.
“전투 훈련에서 살아남을 만한 팁이라면 내가 좀 알려줄 수 있어.” 리애넌 옆에 있던 소여가 하루 사이에 자란 갈색 수염을 만지면서 말했다. 수염자국이 생겼어도 주근깨가 다 가려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역사는 잘 못해.”
치아 하나가 허공을 날아오르는 모습을 목격하니 목으로 담즙이 치솟았다.
“그만!” 에메테리오 교수가 외쳤다.
오렐리가 리독의 몸 위에서 내려와 서더니 찢어진 입술을 만져보고 피를 확인한 후에야 리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독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시애나, 리독을 힐러에게 데려가라. 평가 시간에 치아를 잃을 이유는 없다.” 에메테리오 교수가 지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