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하자.” 리애넌이 갈색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서로 돕자고. 네가 역사 공부를 도와주면 우린 너의 격투 훈련을 도와줄게. 괜찮을 것 같아, 소여?” “완전 좋아.”
“좋아.” 나는 3학년 한 명이 수건으로 매트를 닦는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하지만 내 쪽에 더 좋은 거래 같은데.”
“내가 날짜 외우는 모습을 못 봐서 그래.” 리애넌이 농담을 던졌다.
매트 몇 개 건너편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비명 소리에 모두가 돌아보았다. 잭 발로우가 다른 1학년에게 헤드록을 걸고 있었다. 상대는 잭보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그렇다 해도 나보다는 20킬로그램 넘게 무거워보였다.
잭은 여전히 상대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로 팔을 당겼다. “저놈은 진짜 개….” 리애넌이 입을 열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고, 잭이 잡고 있던 1학년이 축 늘어졌다.
“자비로운 말렉이시여.” 나는 잭이 그 남자를 바닥에 떨구는 모습을 보며 속삭였다. 말렉의 이름을 얼마나 자주 불러야 할지, 이곳에 죽음의 신이 사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워졌다. 아침에 먹은 게 올라오려 했지만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면서 꾸역꾸역 참았다. 여기에서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을 수 없으니 말이다.
“내가 뭐라고 했지?” 그쪽에 있던 강사가 매트 위로 달려들며 외쳤다. “목을 부러뜨리다니!” “이 녀석 목이 이렇게 약할 줄이야 몰랐죠!” 잭이 반박했다.
‘넌 죽은 목숨이야, 소른게일. 그리고 널 죽이는 건 내가 될 거야.’
어제 잭이 했던 다짐이 내 기억을 스쳤다.
“앞을 봐라.” 에메테리오 교수가 명령했다. 우리 모두가 죽은 1학년에게서 시선을 돌렸을 때 그의 말투는 이전보다 친절했다. “익숙해질 필요는 없지만 너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멀쩡하게 움직여야 한다. 너, 그리고 너.”
그는 리애넌과 우리 대대의 다른 1학년을 지목했다. 다부진 몸에 새까만 머리, 특히 각진 이목구비가 특징인 남자였다. 쯧,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트레버였나? 토마스였나? 이 시점에서 누가 누군지 기억하기에는 새로운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데인을 흘긋 보았지만 그는 매트에 오른 두 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리애넌은 상대방을 빠르게 해치웠는데 펀치를 피하고 타격을 꽂을 때마다 놀라웠다. 빠른 데다 타격은 강력하니 미라만큼이나 두드러지게 치명적인 조합이었다.
“항복?” 리애넌은 상대를 쓰러뜨린 후, 내리치던 손을 목 바로 위에서 멈추고서 물었다.
태너였나? 분명히 T로 시작하는 이름이긴 했는데.
“아니!” 그는 외치더니 리애넌에게 다리를 걸어 쾅 소리 나게 쓰러뜨렸다. 그러나 리애넌은 몸을 굴리더니 빠르게 일어나서 다시 그를 같은 자세로 눕혔고, 이번에는 목에 부츠를 갖다댔다.
“글쎄, 타이넌. 항복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데인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널 갖고 놀잖아.”
아! 그렇지. 타이넌이었네.
“꺼져, 에이토….” 타이넌은 쏘아붙였지만, 리애넌의 부츠가 그의 목을 누르고 있어서 마지막 말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타이넌의 얼굴빛이 검붉게 물들어갔다.
그래, 타이넌은 상식적인 판단보다 자존심이 더 강했다.
“항복했다.” 에메테리오 교수의 외침에 리애넌은 물러서서 손을 내밀었다. 타이넌은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너하고….” 에메테리오 교수는 반역의 인장이 있는 분홍색 머리 2학년을 가리켰다. “그리고 너.”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분홍 머리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몸도 드러난 팔뚝만큼 탄탄해서 완전히 좆된 상황이었다. 저 여자가 나에게 손대게 둘 순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매트에 올랐다. “넌 할 수 있어.” 리애넌이 지나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소른게일.” 분홍 머리는 신발에 묻은 오물 보듯이 나를 쳐다보며 연한 초록색 눈을 가늘게 떴다. “모두가 네 어머니가 누군지 아는 사태를 원치 않았다면 머리카락을 염색했어야지. 이 분과에 은발 괴짜는 너뿐이야.”
“내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리기 싫단 말은 한 적 없는데.” 나는 매트 위에서 상대방과 맴을 돌았다. “난 외부와 내부 양쪽의 적에게서 우리 왕국을 지킨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상대방이 턱을 악물자, 내 가슴에 희망의 거품이 피어올랐다. 오늘 아침에 들으니 팔에 반역의 인장이 찍혀 있는 이들은 ‘낙인자’라고도 불렸는데, 그들은 부모의 처형을 내 어머니 탓으로 돌렸다. 좋아. 날 미워하라지. 어머니는 종종 싸움에 감정을 넣는 순간 이미 진 거라고 말했다. 혈관에 얼음이 흐르는 내 어머니가 옳았기를 지금보다 간절히 기도한 적이 없었다.
“나쁜 년.” 상대가 부글부글 끓었다. “네 어머니가 내 가족을 죽였어.”
그녀는 앞으로 달려들며 거칠게 팔을 휘둘렀고, 나는 잽싸게 피하면서 두 손을 올려 몸을 돌렸다. 그런 동작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나는 그녀에게 잽을 몇 대 때리고는 내 계획이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한 번 더 나를 빗맞히고는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이번엔 내 머리로 발을 날렸다. 나는 쉽게 아래로 피했지만 다음 순간에 그녀가 재빠르게 바닥에 내려앉으면서 반대쪽 발을 내질렀다. 그 발차기는 내 가슴을 정통으로 때려서 뒤로 날렸다.
나는 쿵 소리 나게 매트에 쓰러졌고, 동시에 그녀는 이미 내 위에 올라탔다. 정말 욕 나오게 빨랐다.
“여기에선 네 능력을 쓸 수 없어, 이모젠!” 데인이 외쳤다.
이모젠은 나를 죽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모젠의 눈이 내 눈을 내려다보았고, 그녀가 미소를 짓는 순간에 뭔가 단단한 것이 내 옆구리를 빠르게 긋는 느낌이 났다. 하지만 그 미소는 우리 둘 다 아래를 보는 순간 사라졌다. 나는 단검 하나가 칼집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옷이 내 목숨을 구했다. 고마워, 미라 언니. 이모젠은 혼란으로 잠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잠시라곤 해도 내가 그녀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몸을 굴려 빠져나올 정도의 시간은 됐다. 주먹을 제대로 쥐고 쳤는데도 손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둘 다 일어서면서 나는 통증을 차단했다.
“그건 무슨 갑옷이야?” 이모젠은 원을 그리고 돌면서 내 옆구리를 노려보 았다.
“내 갑옷.” 나는 이모젠의 공격에 몸을 숙이고 피했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움직임이 흐릿했다.
“이모젠!” 에메테리오 교수가 외쳤다. “또 그러면 내가….”
이번에 나는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틀었지만 그녀가 나를 붙잡아서 바닥에 쓰러뜨
렸다. 매트가 내 얼굴을 때렸고, 이모젠은 내 등에 올라타 무릎으로 누르며 내 오른팔을 등 뒤로 잡아당겼다.
“항복해!” 이모젠이 외쳤다. 나는 항복할 수 없었다. 첫날에 항복한다면 둘째 날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싫어!”
이제 나는 타이넌처럼 상식적인 판단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차이가 있다면 내 몸은 타이넌보다 훨씬 부서지기 쉬웠다. 이모젠이 내 팔을 더 강하게 잡아당기자 아픔이 모든 생각을 집어삼키고 시야 가장자리를 검게 물들였다.
나는 인대가 늘어나다가 찢어지면서 팝! 소리를 내자 비명을 질렀다.
“항복해, 바이올렛!” 데인이 외쳤다. “항복해!” 이모젠이 요구했다.
나는 이모젠의 무게를 등에 얹고 숨을 헐떡이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이모젠이 내 어깨를 비틀어 뜯자 아픔이 그대로 나를 잡아먹었다.
“항복해라. 그만하면 됐어.” 에메테리오 교수가 끼어들며 말했다.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다시 들렸는데, 이번에는 그게 내 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