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날 해치려던 사람은 없었어, 데인.” 나는 등을 벽에 기대면서 무릎에 가해지는 무게를 덜었다.
“아직 서로를 죽여대기엔 다들 너무 지친 데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심한 상태였겠지.” 어젯밤에 막사는 소등하자마자 빠르게 조용해졌다.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였다.
“그리고 뭘 먹긴 한 거야? 6시가 되어 종소리가 울리면 기숙사에서 빨리 내쫓는 거 알아.”
“다른 1학년과 같이 아침을 먹었고, 혹시나 잔소리하기 전에 말해두자면, 종소리가 들리기 전에 이불 속에서 무릎을 다시 싸매고 머리도 땋았어. 난 몇 년이나 서기 일정으로 살았어, 데인. 서기들은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실은 그것 때문에 아침식사 직무에 자원할까 싶기도 해.”
그는 정수리 쪽으로 단단히 틀어올려 핀으로 고정시킨 내 은빛 땋은 머리 끝을 보았다. “그 머리는 잘라야 해.”
“말도 꺼내지 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데엔 이유가 있어, 바이. 누군가가 대련장에서 네 머리채를 잡는 순간….”
“대련장에서 내가 먼저 걱정해야 할 건 머리카락이 아니야.”
데인은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난 그저 너를 지키려고 하는 것뿐이야. 내가 오늘 아침에 널 피츠기븐스 대위님 품에 밀어넣고 제발 여기에서 데리고 나가달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운 좋은 줄 알아.”
나는 그 엄포를 무시했다.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고, 나는 데인에게 얻어내야 할 정보가 있었다. “왜 어제 우리 대대가 제2비행단에서 제4비행단으로 이동한 거야?”
데인은 뻣뻣하게 시선을 돌렸다.
“말해.” 내가 혹시 있지도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지 알아야 했다.
“젠장.” 그는 거칠게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제이든 라이오슨이 네가 죽기를 원해. 어제 이후로 지휘부는 다 아는 사실이야.”
아니군. 과잉 반응이 아니었어.
“나와 직통으로 연결되게 대대를 이동시킨 거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도 아무도 문제 제기를 못하게 만든 거야. 난 그놈이 내 어머니에게 복수할 수단이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자니 심장이 펄쩍 뛰지도 않았다.
“생각대로네. 그냥 내 상상이 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둬야 했어.”
“내가 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 데인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달래듯이 엄지손가락으로 내 광대뼈를 쓸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아.” 나는 벽을 밀어 데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걸어나갔다. “수업에 가야 해.” 이미 로톤다를 통과해 가는 생도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데인의 턱이 잠시 움직이더니 미간에 주름이 다시 잡혔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해. 특히 전투 브리핑 시간에는 납작 엎드려 있어. 머리카락 색깔으로도 네 정체가 드러나기는 하겠지만, 그건 딱 하나 우리 분과 전체가 듣는 수업이야. 혹시 2학년생 한 명이 경호할 수 있을지 내가 알아볼게.”
“역사 시간에 누가 날 암살하진 않을 거야.” 나는 눈을 찌푸렸다. “학예동이야말로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단 한 곳이야. 제이든이 뭘 어쩌겠어? 날 강의실에서 끌어내 복도 한가운데서 칼질이라도 하겠어? 아니면 진심으로 제이든이 전투 브리핑 시간에 날 찌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라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어. 제이든은 말도 못하게 무자비해,
바이올렛. 녀석의 드래곤이 왜 녀석을 선택했다고 생각해?”
“어제 연단 뒤에 착륙했던 군청색 드래곤 말이지?” 속이 뒤틀렸다. 그 금빛 눈이 나를 재보던 모습이란….
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게일은 블루 대거테일이고… 광포해.”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해하지 마. 캐스도 열받으면 험악하게 굴어. 레드 소드테일이니까. 그렇지만 드래곤들도 대부분 스게일은 피해.”
나는 데인을, 정확히는 데인의 턱을 특징짓는 흉터와 친숙하면서도 낯선 냉정한 두 눈을 응시했다.
“왜?” 데인이 물었다. 주위에 들리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오가는 발소리도 늘었다.
“넌 드래곤과 계약했지. 내가 알지도 못하는 능력을 가졌어. 마법으로 문을 여는 데다가 대대장이기도 해.”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느릿느릿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내가 데인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정말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네가 아직도… 데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난 여전히 나야.” 데인의 자세가 부드러워지더니 짧은 튜닉 소매를 들어올려 어깨에 찍힌 레드 드래곤의 인장을 드러냈다.
“그저 이게 생겼을 뿐이야. 능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캐스가 다른 드래곤보다 많은 마력을 흘려보내긴 하지만 내가 그 힘에 숙련되려면 아직 멀었어. 난 그다지 변하지 않았어. 그리고 계약으로 생긴 인장을 통해 쓰는 마법에 대해서라면 전형적이고 사소한 마법밖에 못 써. 문을 연다거나 속도를 올린다거나 불편한 깃펜을 쓰는 대신 잉크 펜을 작동시키는 정도야.”
“네 고유 능력은 뭔데?” 모든 라이더는 계약한 드래곤이 채널링을 시작해서 마력을 흘려보내면 소소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만, 고유 능력은 그중에서 두드러지는 특별한 능력이다. 드래곤과 라이더 사이에 맺어진 독특한 유대 관계의 결과로 각각 발현되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다.
같은 고유 능력을 갖는 라이더들도 있다. 불, 얼음, 물을 조종하는 능력은 가장 흔한 고유 능력이고 모두 전투에 유용했다. 그러나 라이더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고유 능력이 따로 있다. 내 어머니는 폭풍의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멜그렌은 전투의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제이든의 고유 능력이 무엇일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생각하지 못한 때에 그 능력을 써서 나를 죽일지 여부도.
“난 사람의 최근 기억을 읽을 수 있어.” 데인이 조용히 인정했다. “본질적으로 마음을 읽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에게 손을 대야 하니까 보안상 위험인물도 아니지. 하지만 내 고유 능력이 널리 알려진 건 아니야. 아마 날 정보부에 쓸 것 같아.”
그는 한쪽 어깨에 달린 제4비행단 표식 아래 나침반 모양 패치를 가리켰다. 그 표식은 고유 능력이 기밀이라는 의미다. 어제는 내가 그 패치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럴 수가.” 나는 미소 지으며 제이든의 제복에는 그런 패치가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진정하려 숨을 들이마셨다.
데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입가에 신이 난 웃음이 걸렸다. “아직은 배우는 중이야. 물론 캐스와 가까이 있을 때 더 잘하지만 말이야. 난 다른 사람의 관자놀이에 손을 얹기만 하면 그 사람이 본 걸 볼 수 있어. 정말… 믿기지 않지.”
그런 고유 능력이라면 데인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가 가진 가장 값진 심문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안 변했다고 하다니.” 반쯤은 놀리는 말이었다.
“이 학교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뒤틀 수 있어, 바이. 허세도 치장도 다 잘라내서 사람의 핵심을 드러내버리지. 군에서 그러길 원해. 사람의 가장 소중한 유대 관계를 잘라내어 소속 비행단에만 충성하게 만들고 싶어 해. 그게 1학년생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고. 그게 허용됐다면 내가 너한테 편지 썼을 거라는 거 알지? 하지만 1년으로는 절친한 친구에 대한 마음이 사라질 순 없어. 난 여전히 데인이고, 내년 이맘때의 너도 여전히 바이올렛일 거야. 우린 여전히 우리일 거야.”
“내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 나는 종소리를 들으며 농담을 던졌다. “수업 가야겠어.”
“그래. 그리고 난 비행장에 늦을 거야.” 데인은 기둥 모서리 쪽을 가리켰다.
“봐, 라이오슨은 그래도 비행단장이야. 널 노리기는 하겠지만 코덱스 안에서 방법을 찾을 거야. 최소한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는 그래. 나는….” 그의 두 뺨이 붉어졌다.
“현재 제3비행단장인 앰버 메이비스와 작년에 아주 좋은 친구로 지냈거든. 장담하는데 비행단장들에게 코덱스는 신성한 규칙이야. 이제 너 먼저 가. 대련장에서 보자.” 그는 나를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봐.” 나는 마주 미소 짓고는 방향을 돌려 거대한 기둥 아래쪽을 빙 돌아서 사람들이 늘어난 로톤다 안으로 돌아갔다. 생도 수십 명이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내가 갈 방향을 잡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오렌지색과 검은색 기둥 사이에 있는 학예동 문을 발견하고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로톤다 중앙을 가로지르는데 목덜미 털이 쭈뼛 서더니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생도들이 내 주위로 움직였지만 내 눈은 위쪽 강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꼭대기로 향했다.
이런 망할!
제이든 라이오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굵은 두 팔은 제복 소매를 걷어올린 채로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고 있어서 팔을 뒤덮은 경고의 인장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옆에 선 3학년생이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제이든은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심장이 튀어올라 내 목구멍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고작 6미터 정도였다. 내 손가락은 옆구리에 꽂힌 단검을 잡을 태세로 씰룩거렸다.
저놈이 여기에서 저지를까? 로톤다 한가운데서? 대리석 바닥은 회색이니까 직원들이 피를 닦아내기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믿기 어려울 만큼 새까만 눈으로 나를 관찰했다. 마치 내 어디가 가장 취약한지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도망쳐야겠지? 하지만 이 위치를 고수하면 최소한 제이든이 오는 모습을 볼 수는 있다. 제이든의 관심이 옮겨가더니 내 오른쪽을 보고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기둥 뒤에서 데인이 나타나자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하는….” 데인은 당황해서 이마를 구긴 채 나에게 다가왔다.
“계단 위. 네 번째 문.”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잇새로 말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데인이 시선이 위쪽으로 꺾이더니 욕을 하면서 대놓고 나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사람이 적다면 증인도 적다는 뜻이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제이든이 원한다면 분과 전체가 앞에 있어도 날 죽일 터였다.
“너희 부모들끼리 끈끈한 줄은 알았지만.” 제이든이 입술을 비딱하게 기울이고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둘이 그렇게까지 뻔하게 굴어야 하나?”
아직 로톤다에 있던 생도 몇 명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다.
“어디 맞혀볼까.” 제이든은 데인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 어쩌면 첫사랑이려나?”
“저놈도 이유 없이 널 해칠 순 없어, 맞지?” 나는 속삭였다. “이유도 있어야 하고 비행단장 정족수도 있어야 해. 넌 대대장이니까. 4조 3항.”
“정확해.” 데인은 목소리를 굳이 낮추지도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너는 다르지.”
“너라면 애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좀 더 잘 숨길 줄 알았는데, 에이토스.” 제이든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젠장, 젠장, 젠장!
“뛰어, 바이올렛.” 데인이 명령했다. “당장.”
나는 달아났다.